서울 연희동(延禧洞)에 사시는 두 분(가운데 한 분)은 나라만 훔친줄 알았더니 돈까지 훔쳤다고 와글와글이다.충직(忠直)을좌우명으로 삼는 두 분이 그럴리 있겠는가.그러나 훔쳤다고 해도그까짓 4천억원이야 새발의 피다.흥분을 가라 앉히고 우리 주변에 돈이 얼마나 흔한가 살펴보자.
우리나라 국민이 1년동안 부지런히 일해서 번 돈은 대략 3백조원 가량 된다.그러나 이것은 국민총생산(GNP)개념에서 본 재화 생산액이고,실제로 우리나라 안에서 돌고 있는 돈은 이보다훨씬 많다.현금.요구불예금.저축성예금을 합한 총 통화()에 단자(短資)와 투신(投信)등 제2금융권의 돈을 합친 는 4백57조원 가량 된다.는 채권이나 예금증서 같은 현금 대용물을 모두포함하는 가장 넓은 의미의 통화지표다.공포(恐怖)의 대왕(大王)으로 군림하면서 이렇게 많은 돈 가운데 일부를 슬쩍 자기 것으로 「소유 이전」시켜 놨다고 해도 누가 뭐라했겠는가.물론 그분 때는 통화규모가 이렇게 크진 않았지만,어쨌든 죽 떠 먹은 자리지 뭘.
□ 『만약 4천억원 예금설을 확인하고 싶은 의욕이 있다면 호주(濠洲)시드니에 있는 거래자료 분석센터의 「스크린잇」프로그램을 도입해 보는 것도 좋을 거야.이 컴퓨터 프로그램은 원래 가장 위협적인 탄두를 찾아내는 美 공군의 미사일 추적장 치로 개발된 것을 호주 정부가 차용(借用)한 것이라는군.이 장치는 정상적인 자금 유.출입 형태로부터 가장 빗나간,다시 말해 가장 의심스러운 자금 이체(移替)를 가려 낼 수 있다는 거야.호주 국가범죄국은 작년에 이 장치를 이용해서 베 이징(北京)은행의 돈 1억5천만달러를 호주를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로 빼내는 사기극을 적발했대.』 『이 사람아,그런 방법은 돈이 움직일 때나 유효한 것이지 이번 경우처럼 가명.차명.도명(盜名)으로 된 예금계좌에서 꼼짝 않고 엎드려 있을 때는 어떻게 찾아 내나.그건그렇고,4천억원을 비실명으로 예금하려면 몇명의 이름이 필요할까. 가령 1천만원씩 쪼개서 예금했다면 4만명의 이름이 동원됐을테니 가만 있자,이거 내 이름도 도용당한것 아냐.보다 「대담하고 올바른 결정」에 의탁하여 내 이름 찾기 신원(伸寃)운동이라도 벌여야겠군.』 □ 4천억 계좌설을 발설한 장관이 면직당한 것으로서,이 소문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일단 정리한다쳐도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가 너무 크다는 문제점은 그대로 남는다.재정경제원이 93년을 기준으로 추계한 지하경제 규모는 99조~1백11조 원,GNP의 31~41%나 된다.
-영수증 안떼기,무자료 거래,매상액 줄이기 등으로 부가가치세를 탈루하는 돈이 73조원 이상.
-의사.변호사.세무사등 개인 자영업자들이 사업소득세를 탈루하는 돈이 15조원 이상.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이 문제는 시험에 나올테니 밑줄 쫙.각종 사교육비로 얻는 비과세소득이 4조원 이상.
-친절을 사는데 1만원,웃음을 사는데 10만원등 각종 서비스업 종사자의 비과세 팁이 5조원 이상.
그래도 여기에는 비리 사슬에 얽힌 떡값이나 검은 돈은 포함되지 않는다.돈이 너무 흔하다.4천억원 비자금 소문은 그래서 생긴거겠지.
〈수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