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여론조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현대적 여론조사는 20세기 미국 정치사의 산물이다. 1935년 조지 갤럽이 ‘갤럽 폴’을 설립한 것이 출발이다. 갤럽은 이듬해 미국 대선에서 루스벨트의 당선을 정확히 예측해 주목받았다. 물론 미국에는 이전에도 대선 여론조사가 있었다. 일종의 대통령 선호도 조사인 스트로 폴(straw poll)이다. 1824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지만,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등 과학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어 갤럽을 위시한 미국의 여론조사 회사들은 대선 때마다 높은 예측력으로 맹위를 떨쳤다. 아예 예측이 빗나간 1948년 대선과 득표 차 예측에 크게 실패한 80년 대선이 예외였다. 여론조사의 위력은 미국의 정치 풍토마저 바꾸었다. 선거 전략과 진행 과정에서 여론조사의 비중이 커졌고, 여론조사와 미디어 전문가가 캠프의 주요 보직을 맡았다. 미디어 선거도 함께 뿌리 내렸다.

갤럽은 “여론조사는 소수의 정치 엘리트에 맞서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민주주의 도구”라고 강조했다. ‘여론조사=민주주의 꽃’이라는 믿음이다. 반면 조사의 부정확성이나 맹신의 오류, 심지어 여론 조작 위험성에 대한 우려도 꾸준히 나왔다. 특히 공표된 여론조사가 다른 사람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밴드왜건 효과’ 는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혔다. 사람들은 대다수 편에 줄서기를 좋아해 지배적으로 보이는 여론에 쉽게 동조한다는 뜻이다.

80년 미국 NBC가 방송에서 처음 실시한 출구조사(exit polls)도 논란에 휘말렸다. 우리처럼 예측이 빗나가서가 아니라 미국 동·서부 간 3시간 시차가 문제였다. 조사 회사들이 있는 동부에서 실시·발표한 출구조사 결과가, 아직 선거 종료 전인 서부 유권자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점차 낮아지는 투표율도 조사의 정확성을 막는 복병이다. 최대한 투표에 참가할 사람을 찾아내 그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것이 해법이지만 쉽지 않다. 논란이 이어지자 여론조사 검증기구를 두는 나라도 생겼다. 미국의 여론조사검증위원회는 무응답층이 70% 이상이면 조사 결과를 폐기케 한다. 프랑스에도 언론에 보도될 여론조사의 정확성·공정성을 사전 심의하는 여론조사위원회가 있다.

이번 18대 총선은 여론조사의 신뢰도에 큰 상처를 줬다. 방송사의 출구조사는 줄줄이 빗나갔고 신문사의 일부 조사도 도마에 올랐다. 언론학자 강미은씨는 “여론조사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데, 여론조사가 보도될 때는 결과만 중시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실 문제는 선거 때만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여론조사나 통계 수치의 뒷받침이 없으면 불확실한 것으로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선거 여론조사는 그나마 나중에 맞춰 볼 정답이 있지만, 다른 여론조사에는 답조차 없다. 숫자와 통계를 숭배하고 절대화하는 계량주의 시대, 혜안이 필요하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