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趙淳시장의포청천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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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가 아는 조순(趙淳)서울시장은 남다른 식견(識見)과 인품(人品),소신과 경륜을 갖춘 분이며 우리 안의 어느 누구보다도출중한 인물중 한사람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에다 그동안 닦아온 선비로서의,또 경제정책가로서의 좋은 이미지,이것들이 지난번 시장선거에서 마지막 승산을 굳히게 한 직접적 원인이 됐으며 사실 이러한 사람됨을 바탕으로 시정을 이끌어줬으면 하는 것이 서울시민의 소박한 소망이 아 니었던가 여겨진다. 지난 1일 첫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趙시장의 소신,특히김대중(金大中)씨의 신당에 관한 입장표명은 퍽 신선한 느낌을 준다. 임기중 정당문제는 생각할 시간이 없을 것이란 점,서울시의 문제해결에만 전념하겠다는 점,조언은 듣겠지만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겠다는 점,이런 것 모두 과연 조순박사답다는 신뢰감을 준다.
도쿄(東京)에서 듣더라도,뉴욕과 런던시민이 듣더라도,자카르타나 다카의 이방인이 듣더라도 이 한마디로 趙시장은 이제 세계인의 뇌리에 훌륭한 사람.괜찮은 사람으로 부각될 것이 틀림없다.
서울시란 어떤 도시인가.趙시장의 말대로 부실건물과 같고,사면이 꽉 막혀 있을 정도로 해결이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문제 도시가 아닌가.그런데도 인구로는 세계 10대 도시중 하나며 여기에 전국의 인재와 문화,생산과 금융,정치와 역사가 다 모여 있는 정말 우리 민족의 사활(死活)이 온통 다 걸려 있는곳이다. 우리가 趙시장에게 바라는 것은 꼭 3년이란 짧은 기간내에 서울시가 안고 있는 고질적 문제들을 모두 속시원히 해결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남다른 식견과 인품을 바탕으로 앞으로 근사한 대도시로탈바꿈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 기틀을 만들면서 꾸준히 소신있게 하나하나씩 얽혀있는 매듭을 풀어주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시민은 조순시장을 반기며 아낄 것이고 나중 퇴임후에라도 공로비를 스스로 세워줄 마음을 지니게 될 것이다.
요즘의 정당은 어떠한가.우리의 인상으로는,특히 지금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정치행태는 마치 시장바닥에서 하루살이하는 시정 장사치같은 느낌이다.
깨어있는 국민의 눈에는 사리사욕에 차 있는 붕당(朋黨)같으며,우리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고 보살피는 양심있는 정치인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만일 趙시장이 이런 판세에 함께 뛰어다닌다면,또 산적한 시정을 팽개치고 남의 눈치만 살피는 정치시장으로 낙인찍힐 일을 하게 된다면,특히 특정 정치지도자의 선거지원등 진 빚을 갚기 위해 신당에 참여한다면 이건 서울시를 위해서도 우리 모두를 위해서도,아니 趙시장 개인을 위해서도 극히 불행한 일이 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나아가 만일 신당정치에 휘말려 서울시의 살림이 뒤틀린다면,그래서 서울시민의 소박한 기대를 박차게 된다면,그때부터 趙시장은스스로를 버리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신당의 끈질긴 회유가 예견된다.공의(公義)와 사의(私義)사이에서 정치논리를 앞세운,아니 논리없는 정치 회오리 가운데서 그로선 이만저만한 고민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알기로는 이런 가운데서도 趙시장의 이번 결심은 끝까지변치 않으리라 본다.본인의 말대로 언행일치(言行一致)할 때,조순박사는 우리의 시장,아니 우리 시대의 인물로 부상할 것이며,이런 선택하나만으로도 따르는 후학들에게 귀감이 될뿐만 아니라 그간 닦아왔던 경륜이 더 높은데로 승화하는 전기를 맞게 될 것이다. 〈韓國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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