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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바둑의 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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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결승 3번기 제3국>
○·박영훈 9단(1승1패) ●·이세돌 9단(1승1패)

제1보(1~14)=스코어는 1대1. 드디어 최종국이다. 용기, 열정, 정확성, 투혼, 집중력… 큰 승부가 요구하는 것들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체내의 마지막 1g까지 온몸을 불태워야 하고 동시에 북극의 얼음처럼 차가운 정신을 유지해야 한다. 때로는 잔돈을 초개같이 알아야 하고, 때로는 한 집에 목숨마저 걸어야 한다. 이런 작업에 적합한 기질을 지닌 자가 바로 승부사다. 돌을 가리니 이세돌 9단이 흑. 오늘따라 유난히 신중해 보이는 이세돌의 첫 수가 우상 소목에 떨어졌다.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바둑돌은 저마다 언어를 토해낸다. 백6의 마늘모가 전해주는 언어는 ‘견고함’이다. 흑의 급전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느릿하게 조화를 추구하겠다는 박영훈 9단의 심사가 엿보인다. 7의 굳힘과 9의 밑붙임은 ‘집’을 말하고 있다. 최종국일수록 ‘실리’는 좀 더 강한 유혹으로 대국자를 빨아들인다. 프로라면 한 집을 찾아 헤매는 종반의 고통을 모를 사람이 어디 있으랴.

13의 언어는 ‘균형’이다. 정석대로 ‘참고도’ 흑1로 벌리면 백2의 육박이 절호점이 된다. 백△들의 능률을 최대화시키며 흑▲의 운신을 거북하게 만드는 일석이조의 요소. 흑13이 놓이자 흑의 움직임이 빠르게 느껴진다. 스피드(실리)-이게 흑의 초반 전략인 셈이다. 14는 두터운 요소. 백은 계속해 두터움을 쌓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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