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행정체계 개편, 어떻게 할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오늘날 세계는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광역경제권으로 지역 구조를 개편하려는 혁명적 발상의 전환을 경쟁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연방국가인 독일의 경우 16개 주를 9개의 광역 주로 재편하는 논의가 진행 중이고, 프랑스는 광역 행정구역인 22개 레지옹을 6개의 대(大)지역으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다. 일본도 오래 전부터 광역단체인 47개의 도도부현(都道府縣)을 6∼12개 권역으로 재편하는 도주제(道州制) 도입이 논의되고 있다. 유럽의 수퍼지역(Super Region)이나 일본의 지역국가(Region-State)라는 경쟁력을 갖춘 지역광역화 개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세계적 경향은 하나같이 세계화와 지방화라는 소위 21세기 세방화(世方化·Glocalization) 시대를 맞아 국가 간 경쟁이 아니라 지역 간 경쟁으로 국가 경쟁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면서 행정체계의 광역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세계적 추세와 급변하는 행정환경을 고려할 때 새 정부의 광역경제권 계획은 늦은 감은 있으나 다행이라 할 수 있다. 행정체계 문제는 비단 지역 경쟁력뿐만 아니라 지방재정 상황의 악화나 복잡한 지방행정 구조로 인한 비효율성, 생활권역의 확대와 교통통신 발달에 의한 전국의 1일 생활권화, 낭비적인 행정 거래비용, 그리고 생활권과 행정권의 일치 요구 등 개편의 필요성이 강조되어 왔다. 여기에는 물론 행정구역과 함께 복잡한 지방자치 계층구조에 대한 논의도 포함된다.

중앙정부-광역(특별시·광역시·도)-기초(시·군·자치구)-하부 행정계층(행정구/시·읍·면·동)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4∼5단계 계층구조는 중복으로 인한 낭비와 비능률, 행정 계층 간 거래비용 증가, 폐쇄 체제로 인한 마찰과 갈등 야기, 절차적 규제의 심각성, 행정의 자기완결성 부족, 도 단위로 형성된 지역감정의 상존, 교통통신 발달에 의한 생활권역 확대에 대한 대처 미약, 지식정보화 시대에 부응하는 적정 공간범위 미확보 등의 문제점이 늘 지적되어 왔다.

이제 정부가 구상한 광역경제권의 현실화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마지막 남은 개혁과제’인 행정체계 개편을 논의할 때다. 획일적이고 중앙집권적 독단으로 그동안 작게 쪼개고 복잡하게만 만들어 왔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지역경쟁력을 통한 국가 발전을 위하여 행정체계의 광역화와 계층 구조의 단순화를 국민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통·통신이 거의 없었던 백년 전에 만들어진 낡은 틀과 일제 식민지배의 잔재를 여전히 유지하면서 21세기 글로벌 경쟁력을 위한 행정체계라고 강변할 때가 아니다. 특히 국가경쟁력을 위한 세계적인 개혁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우선 중립적인 행정체계 개편 추진기구라도 만들어 다양한 방안을 연구하고, 이로부터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가의 기본 틀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미래 지향적으로 접근한다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심익섭 동국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