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형숙의좋은엄마되기] 고집스레 이것저것 혼자 다 해보려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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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딸이 여름옷을 입고 나가겠다고 해서 못 하게 했더니 뒤집어지고 울어요. 아이가 별나서 엄마 구두 신는 것도 좋아해요. 자칫 발이 꺾어질까 염려되는데 아이는 고집스럽게 하고자 하는 것은 다 하려고 해요. 아이가 또 뭐를 발견할까 무서워요. (황희영·34·서울 서초구)

영리한 아이군요. 도전정신도 강하고. 아주 건강하니 염려 마세요. 사람은 누구나 더 나아지려 노력합니다. 아이는 주변에 있는 보통의 것보다는 좀 나은 것을 찾아 들여다보고 누려보려는 경향이 있지요. 제철 옷만 입기는 심심하잖아요. 제 신만 신기도 따분하고요.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겁니다. 두어두세요.

엄마 구두 신는 것은 발이 꺾여 위험할 수 있으므로 곁에서 잡아주며 신으라고 해요. 중심 잡는 훈련이 되기도 합니다. 그 순간, 이 어린 아이가 엄마처럼 숙녀가 된다는 상상을 해보세요. 아이의 그런 행동이 밉지만은 않을 거예요. 아이는 그저 어른 흉내를 내고 싶은 것뿐이지요. 몇 번 그렇게 누리고 나면 아이는 또 다른 놀이로 이동하며 클 겁니다.

아이들만 혼자 하면 위험하지만 엄마가 곁에서 거들어 주면 위험한 게 아니에요. 무엇이나 다 좋은 학습도구인 셈이지요. 성냥 켜기, 유리그릇 갖고 놀기, 다리미 만지기도 조심스럽게 위험함을 알리고 만지게 하는 것도 필요해요. 어른과 함께 만져야 한다고만 알리면 되죠.

제철 아닌 옷을 입는 것은 어떤 아이나 한번쯤은 해보는 놀이예요. 겨울에 여름옷을 입으면 그렇게 입고 나가자고 하세요. 단 겨울옷을 몰래 챙겨가지고 따라가야죠. 아이가 추워하면 그때 입히면 돼요. 한번 경험하면 다시는 그러지 않아요.

여름에 겨울옷을 입는 것도 문젠데 제 딸이 그랬죠. 땀을 많이 흘려 여름 감기를 앓기도 하거든요. 건강도 염려되었지만 처음엔 아이의 그런 고집이 싫어 못 입게 했고,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 부끄러워 아이의 고집을 꺾으려 했어요. 현관에서 그 승강이를 하는데 아이는 겨울 털부츠까지 발견해 신고 나서는 거예요. 얼마나 밉던지.

순간 달리 생각해 보았어요. ‘이게 뭐 못할 일인가? 누구를 괴롭힌다고 아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못 하게 하나’ 싶어 하도록 두었지요. 내 아이가 더 소중한 것이 아니라 남이 늘 더 중요했던 거죠. 그러니까 남의 이목 때문에 내 아이의 자유를 빼앗았던 거예요.

아이라서 모든 것이 신기하고 탐험 대상으로 보여요. 그런 탐험이 아이의 지혜를 살찌우는 겁니다.

서형숙 엄마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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