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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잊혀진 전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국전쟁은 미국(美國)인들에게 「잊혀진 전쟁」이다.2차대전과베트남전쟁의 중간에 희미하게 떠올리는 하나의 막간(幕間)전쟁이다.전쟁 발발 첫 보고를 접한 미국 지도자들은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데 우선 안도했다고 한다.당시 한국은 미국 이익에 중요한 존재가 못됐다.
미국의 참전도,어정쩡한 휴전도 美蘇간 대결구도의 틀 속에서 시종 요리됐다.전쟁 3년동안 미군은 5만4천2백46명이 전사했다.그러나 한국전쟁 뉴스가 미국 신문의 1면을 차지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고 한다.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퍼레이드나 환영행사 하나 없이 미국 사회로 조용히 원대복귀했다.美보병 제24사단 기관총 사수로 10개월을 일선에서 보낸 올해 67세의 한 재향군인은 『금요일에 귀국해 주말을 쉬고 월요일에 인쇄소 직장으로 새 출근했다』고 회고한다.
한국전쟁은 20년후 TV 인기 드라마 『야전이동병원』(MASH)으로 미국인들에게 더 잘 알려졌을 정도다.한국전쟁으로 냉전적 대결이 심화되고 한반도는 잿더미로 변한 채 남북분단이 고착화됐다.일본에 전쟁특수(特需)를 안기고 한국과 대 만등에 반공독재자들을 등장시켰다.지금도 한반도는 「기술적으로 전쟁상태」에놓여있는,도무지 잊혀질 수 없는 전쟁이다.
미국에서 한국전쟁 때의 재향군인은 57만명으로 추산된다.휴전42주년을 맞아 제막되는 한국전쟁 참전 기념물은 참전용사들의 안간힘의 결실이다.『우리는 잊혀진 전쟁의 잊혀진 사람들이다.이대로 역사 속에 묻힐 수는 없다』고 이들은 절규 한다.1천8백만달러의 모금으로 건립된 기념물은 묘지도,「전쟁의 영광」도 아니다.「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는 명각(銘刻)아래 자신들의 값진 희생을 역사에 인정받으려 한다.
나흘간의 축하행사에 10만명 이상의 방문객이 워싱턴에 몰릴 것으로 주최측은 예상한다.참전용사들은 대부분 60대로 즐겨 여행을 다니는 때인데다 한국의 단체관광객들까지 고려하면 연말까지50만명은 넘어서리란 추산이다.
韓美정상회담을 앞두고 韓美관계에 「상호불신」의 냉기류가 계속흐르고 있다는 걱정도 곁들인다.축하 열기와 국빈 방문의 겉치레속에 이 저류(底流)가 간과된다면 참전 기념물은 우리에게 워싱턴의 다섯번째 기념물 관광코스에 불과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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