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선거구 허리 자른 "肝큰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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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국회가 15대 총선의 선거구를 획정하면서 충북 보은-옥천-영동지역을 한강의 성수대교처럼 중간을 절단해 분리한데 대한 이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쉽게 누그러들 것 같지 않다.
국회가 하나의 선거구인 보은-옥천-영동선거구에서 가운데 위치한 옥천군을 잘라내 단일 선거구로 만드는 바람에 보은과 영동은한 선거구가 되었는데도 견우와 직녀 신세처럼 옥천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게 되었다.
국회는 선거구 하나를 늘리면서 3개군 가운데 인구가 많은 지역을 떼어내다 보니 옥천(6만5천여명)이 분리되었다고 이유를 대고 있다.
너무나 궁색한 변명이다.이런 식의「게리맨더링」은 비단 이 지역 뿐만이 아니다.조선왕조 순조(純祖)때 미국의 정치판에 나타났던 도마뱀(게리맨더링의 속뜻)이 1백80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정치판에 서식한다는 것은 여간 수치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그 뿐인가.속을 들여다 보면 더욱 한심스럽다.국회 선거구획정위원회가 마련한 당초의 획정기준은 인구의 상한선과 하한선을 각각 30만명과 7만명으로 하여 7만명미만은 통폐합하고 30만명이상은 2개,60만명이상은 3개 선거구로 분 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기준은 여야의 당리당략과 이해당사자인 국회의원들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졌다.인구 7만명미만의 기존 선거구가 되살아났다.
시.군이 통합되어 하나의 행정구역이 되었으나 인구 30만명미만이라서 선거구를 하나로 줄여야 하는데도 두개의 선거구로 나뉘게 되었다.정당들은 당리 때문에,국회의원들은 금배지 때문에 원칙과 기준을 허물고 상식을 무너뜨린 것이다.
국회도 선거법에 의해 구성된 선거구획정위원회 조정안을 헌신짝처럼 버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스스로 선거법을 어긴 셈이 되었다.
이른바 대정치가들의 식언(食言)과 도덕불감증세 속에 법을 만드는 의사당에서조차 법이 외면되는 모습을 보며 시민들은 고개를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요즘 많이 회자되는 진짜 간 큰 남자는 과연 누구인가.
국회의 이러한 처사에 유권자 개개인의 존재가 진중하게 고려되었을리 만무하다.이는 이번의 선거구 획정에서 인구편차가 약 6대1까지 벌어진 데서 잘 나타난다.
미국의 경우 최대인구편차 3대1이상을 위헌으로 판시하였고,영국은 인구편차를 3.88대1로 축소했다.독일은 선거구 평균인구의 상하 33.3%가 넘게 되면 선거구를 재획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일본도 기본적으로 인구격차가 2대1이상 되지 않도록 하고있다. 우리는 이런 추세와는 거꾸로 달려가고 있다.13대 총선의 인구편차 4.6대1이 14대때는 5대1로 늘어나더니 이번에는 5.9대1까지 벌어졌다.헌법에 규정된 평등권을 침해하는 이러한 「표의 차등성」은 결국 정치적 후진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간과 인권 경시의 극명한 예다.아울러 정당이 중심이 되고 국회의원이 주인이 되며 시민 개인의 존재는 하찮게 취급되는 반증이다.
「루소」는 일찍이 갈파했다.『유권자는 투표할 때만 주인이고 투표하고 나면 노예로 전락한다.』그러나 우리는 이미 투표하기 전부터 주인의 자리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국회는 이번선거구 획정과정에서 민의를 대변하기는커녕 평범한삐상 식마저도 허물어 버렸다.정치적 합리주의 관점에서 보면 선거구의 불합리한획정은 민주주의의 원천적 부정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당들에 의해 당리당략으로,이해당사자들에 의해자의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주권자에 대한 횡포요 우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5대 총선 전에 마지막남은 9월 정기국회가 이문제를 어떻게바로잡을지 주시하고자 한다.
〈건국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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