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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어쿠스틱 본능’ 깨어났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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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데뷔 앨범 ‘스토리 오브 어스’를 낸 어쿠스틱 밴드 ‘이바디’ 멤버들. 왼쪽부터 저스틴 김, 거정, 호란.

‘일렉트로니카’라는 새장(장르) 안에 갇혀 있던 새가 숲으로 자유로이 날아간 듯한 느낌이랄까. 혼성 3인조 일렉트로니카 그룹 ‘클래지콰이’의 여성 보컬 호란(29)이 어쿠스틱 밴드 ‘이바디’(잔치의 옛말)의 보컬로 변신했다. 클래지콰이 활동을 병행하니 ‘이중 생활’이라는 표현을 붙일 만하다.

그는 기타리스트 거정(36·본명 임거정), 베이시스트 저스틴 김(32)과 함께 모던 포크의 감성이 짙은 앨범 ‘스토리 오브 어스(STORY OF US)’를 내놓았다. 두 밴드에서 보컬을 겸업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일렉트로니카와 어쿠스틱을 넘나들다니 극과 극이다.

“어쿠스틱은 꼭 해보고 싶은 장르였어요. 클래지콰이에 합류하기 전에 했던 음악도 포크·어쿠스틱이었죠. 대척점에 있는 장르지만, 외국에는 두 장르를 넘나드는 뮤지션들이 많아요.”

호란은 어쿠스틱 보컬로의 변신을 ‘화장을 지운 느낌’이라고 했다. 유행하는 말로 ‘생얼’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기계적으로 꽉 짜인 사운드에 보컬을 흘려 보내는 일렉트로니카와 달리, 어쿠스틱은 악기들과 조화를 이뤄 자연스럽고 솔직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클래지콰이의 음악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호란의 속삭임과 호흡을 이번 앨범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깔끔한 사운드와 기계적인 리코딩에 익숙해 있었는데, 감정이 담긴 목소리를 내려니, 참 힘들었어요. 노래하면서 나도 모르게 편집할 생각을 하게 되고…. 녹음 부스 안에 들어갔다가 아무것도 못하고 나온 적도 있었죠.”

감춰져 있던 ‘어쿠스틱 본능’ 때문일까. 호란은 이번 앨범에서 소박하고 솔직한 보컬을 뽐냈다. 피아노·기타·브러시 드럼 위를 사뿐히 날아다니는 나비 같다.

그는 타이틀곡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서 화장기 없는 상큼한 보컬을, ‘그리움’에서 사운드의 여백을 꽉 채우는 색깔 있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초코캣’에서는 장난기와 재치 넘치는 보컬을 뽐낸다.

“클래지콰이에서는 남자 보컬 알렉스가 있어서 부담이 덜한데, 이바디에서는 혼자 앞에 서니까 많이 떨려요. 하지만 무척 편안해요. 자연스러운 감성을 목소리에 실으면 되니까요. 화려하게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났다고나 할까요.”

어쿠스틱 음악을 해왔던 거정과 저스틴 김, 두 멤버에게 일렉트로니카 보컬 호란의 영입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 남자 보컬을 찾고 있던 두 멤버와 호란이 뜻이 맞은 계기는 한 장의 앨범이었다.

“클래지콰이 세션을 하면서 호란과 친해졌는데, 그가 어쿠스틱에 관심이 많은 줄 몰랐어요. 우연히 호란이 대기실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호란도 우리 작업실을 기웃거리다가 CD 한 장이 놓여 있는 걸 보고, 급속히 친해졌지요. 여성 포크송 가수 애니 디프랑코의 앨범이었어요.” (거정)

“처음에는 걱정했어요. 호란에게 ‘너와 비슷한 보컬을 가진 신인이 있다면 그와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죠. 하지만 작업해보니, 호란의 보컬에서 솔·블루스적인 느낌이 나더군요. 그 때 ‘이건 되겠다’고 확신했습니다.” (저스틴 김)

이들은 이번 앨범의 작곡·작사·편곡 등을 밴드 내에서 소화해냈다. 앨범 타이틀 그대로 솔직하고 담백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호란은 이번 앨범이 ‘숲에서 보내는 하루’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일단 이중 생활을 시작했는데, 왜 걱정이 없겠어요. 이바디 앨범 작업과 클래지콰이 공연이 겹친 적이 있는데, 무대에서 ‘두 집의 공기’가 미묘하게 섞이더군요. 그렇게 안 되도록 노력해야죠. 클래지콰이·이바디 제게 모두 소중한 밴드니까요.”

이바디는 다음달 30일부터 사흘간 서울 청담동의 KS청담아트홀에서 첫 공연을 한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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