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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국부 펀드의 위험성을 줄이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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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시아와 중동의 국부 펀드들이 올 들어 미국 금융회사에 앞다퉈 투자하면서 워싱턴의 경각심이 커졌다. 몇몇 의원들은 외국 자본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미국 내 자산에 끼칠 영향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고유가 또는 수출 호조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국부 펀드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이들 펀드의 등장으로 정치적 우려가 증폭됐다. 현재 국부 펀드의 숫자는 40개에 달하고, 투자 여력은 3조 달러(약 3000조원)나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세계 전체 투자액의 12%와 맞먹는 규모다. 지난 5년 새 두 배나 늘었다. 몇몇 믿을 만한 기관이 예측한 바에 따르면 이들 국부 펀드의 자산 규모는 2015년까지 15조 달러로 증가할 전망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미국 은행들이 자금난에 처해 있는 지금은 미 관료들이 국부 펀드 투자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할 처지가 아니긴 하다. 그러나 2월 7일 ‘미국·중국 경제안보검토위원회’가 개최한 청문회에선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중국 국부 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가 지난해 12월 50억 달러 규모의 모건 스탠리 지분을 인수한 것만 해도 그렇다. 이를 놓고 일부 위원은 외국 정부들이 정치적 목적 때문에 국부 펀드를 이용해 미 기업의 지분을 인수한다고 지적했다. 미 기업과 정부 기관들에 대해 첩보활동을 펴고 금융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민감한 미국 기술에 접근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미국 입장에선 돈을 수혈받는 대가로 ‘트로이의 목마’를 끌어들이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국부 펀드들의 이점은 분명히 있다. 이들은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국제 경제의 불균형을 시정한다. 또 중국과 러시아, 중동 국가들이 미국과 유럽 기업에 더 많이 투자할수록 그들은 국제 정세의 안정에 더 신경을 쓰게 될 것이다.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는 수십 년 동안 제기돼 왔다. 그동안 법적 보호장치는 충분히 마련됐다. 해외 자본의 미국 자산 인수안을 심사하고 승인하는 해외대미투자위원회(CFIUS)의 개혁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7월 의회는 ‘2007 해외 대미투자 및 국가안보법’을 통과시켰다. 기간산업으로 분류되는 대상을 확대하고, 위원회의 정치적 책임을 강화했다.

많은 중국 기업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금지돼 있는 판에 중국의 국부 펀드들이 미국 은행의 지분을 사도록 허용한 데 대한 불평도 나온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자금이 필요한 은행들에 구제금융을 충분히 지원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황이니 도리가 없다.

사실 미국 관리들이 간과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험은 국부 펀드들의 동기가 아니라 운용 능력이다. 싱가포르의 ‘테마섹’이나 노르웨이의 정부연금펀드 같은 몇몇 국부 펀드는 투명하고도 효율적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펀드들은 상황이 좀 다르다. 이들 펀드의 운용 매니저들은 국제적인 투자를 할 때 수반되는 리스크를 다뤄본 경험이 별로 없다. 예컨대 CIC는 미국 사모펀드 기업인 블랙스톤 그룹의 지분 30억 달러어치를 사들였다가 막대한 손해를 봤다. 그 결과 CIC 측은 300억 달러의 기금 운용을 민간 분야의 매니저들에게 위탁하기로 했다.

따라서 선진국 정부가 국부 펀드들을 위한 바람직한 투자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또 이들 펀드가 속한 국가의 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펀드 운용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상호 이익을 가져올 국부 펀드의 투자를 막지 않되 위험도를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 그룹 대표
정리=신예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