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팟·렉서스, 소비자 '변덕' 눈치채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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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기업은 소비자를 알고 싶어 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무얼 원하는지 파악하는 데 열을 올린다. 흔히 소비자나 전문가에게 묻는 식으로 방대한 시장조사를 한다. 미국 일리노이 공대의 패트릭 휘트니(56·사진) 교수는 당연한 듯싶은 이런 방법을 비판한다. 오늘날 소비자 욕구를 파악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대가 ‘기업 가치를 높이는 디자인과 경영의 융합’이란 주제로 최근 개최한 국제회의에 참석하려고 방한한 휘트니 교수를 만났다.

-소비자 설문조사는 기본 아닌가.

“1970년대 소니가 ‘워크맨’ 사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대규모 시장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거의 100%가 ‘안 될 것’이라고 답했다. 걸으면서 음악을 듣는 제품은 그때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 기술과 시장이 급변할 때에는 소비자도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를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한 걸음 떨어져 소비자를 관찰한다. 맥도널드는 소비자들이 어떤 동선으로 움직이고 행동하고 반응하는지 관찰하는 실험매장을 운영한다. 소비자에게 묻지 않는다. 한국 가전업계도 미국 소비자들을 꼼꼼히 관찰해 성공했다. 미국 기업들은 ‘잘 안다’고 자만했다.”

-‘관찰’이 중요해진 이유는.

“상품만 좋아선 안 된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상품→서비스→경험으로 옮겨간다. 애플의 MP3 플레이어 아이팟의 성공은 좋은 경험이다. 음악의 불법 다운로드 필요를 없앴다. 다른 사람과 음악을 나누는 재미를 줬다. ‘소비자 중심’ ‘행위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

-디자인의 역할은.

“제품 또는 서비스 개발의 단계부터 견본(prototype)을 만들어야 한다. 처음부터 디자인을 염두에 두고 소비자를 관찰하면서 수정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서비스도 디자인 혁신이 가능한가.

“미국 시장에서 성능이나 가격대가 비슷한 렉서스가 인피니티를 누른 것은 렉서스의 프리미엄급 서비스 덕분이다. 렉서스 쇼룸은 안내 데스크에 앉아서도 들어오는 고객의 차 번호를 식별할 수 있게 디자인됐다. 고객이 차에서 내릴 때 이미 인적사항과 차에 관한 자료를 갖추고 있어 빠른 서비스가 가능하다.”

-최근의 소비 트렌드는.

“소비자를 예측하기가 힘들어졌다. 소득·교육·주거지를 보면 소비 수준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기호에 따라 돈을 많이 써 소득만 갖고 알기 힘들다. 여유가 없어도 마음에 쏙 드는 물건엔 과감히 지갑을 열고, 억만장자도 할인점을 애용한다. 표적 고객이 모호해졌다.”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맞춤 디자인과 제조를 늘려야 한다. 도요타가 자동차에 맞춤형 생산공정을 도입한 게 일례다. 마지막 결과물을 디자인하지 않은 채 ‘유연한’ 제품이나 시스템을 만든다. 구글은 검색도구를 제공할 뿐 최종 상품을 디자인하지 않았다. 애플은 애프터서비스센터에 ‘수리’ 대신 ‘천재의 공간(genius bar)’이란 문패를 달았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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