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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시산혈해, 천하양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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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결승 3번기 제2국>

○·박영훈 9단(1패) ●·이세돌 9단(1승)

제15보(183∼199)=패로 물고 늘어지며 사투가 계속된다. 다시금 천지대패. ‘이세돌의 사투’는 확실히 겁난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있지만 쓰러지지 않는 이세돌 9단의 모습이 마치 아무리 총을 맞아도 다시 일어서는 영화의 주인공 같다. 해설자들도 인터넷 중계팀도 일을 멈춘 채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본다. 이건 바둑이 아니라 할리우드 액션 영화다.

박영훈 9단은 그러나 동요하지 않는다. 186의 팻감이 먼지 자욱한 상황을 정리하는 준비된 수순이다. 가만 생각하니 흑의 선수를 역으로 해치운 백△는 확실히 결정적인 한 수였다.

흑의 전방위적 저항으로 혼란하기 그지없던 전선을 간결하게 좁힌 깨끗한 한 수!

좌변도 크지만 하변을 다 죽일 수는 없으므로 187로 받는다. 흑에 189의 팻감이 있지만 백에도 193의 팻감이 있다. 김지석 4단이 말한다. “하변은 패와 관계없이 이미 수가 난 모습입니다.”

195에서 불청하고 196(185 자리) 이어 좌하 흑이 다시 전멸했다. 197 뻗자 198과 199로 다시 어마어마한 바꿔치기. ‘참고도’ 흑1로 막아도 백2∼6까지 흑이 안 된다.

판이 온통 시체다.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를 이뤘다. 바둑판을 반으로 갈라 위쪽 절반은 흑이, 아래쪽 절반은 백이 차지하며 천하를 양분했다. 이런 판이 바둑사에 다시 나타날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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