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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이민시대>1.인간답게 사는 세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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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새로운 삶을 찾아 해외로 떠난다.좀더 쾌적한 환경속에서 여유있는 생활을 즐기려고,더 나은 자녀교육을 위해서,혹은 치열한 경쟁이 주는 스트레스를 피해서….삶의 질을 찾아 떠나는 이른바「신종이민」.이국 땅에서 시작한 제2의 인생에는 국내에서 맛보지 못했던 인간다운 삶이 있다.그러나 넘어야 할 벽과 고난도 적지않다.中央日報는 뉴질랜드.호주.캐나다등 3개국 현지취재를 통해 신종이민의 실태를 살펴봤다.
[편집자註]새소리에 잠을 깬다.창문을 열면 투명한 햇살과 싱그러운 숲 내음.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마운트 이든에 사는 김영철(金英哲.43)씨의 하루는 이른 아침 공원을 산책하는 일로 시작된다.푸른 잔디와 수백년은 됐음직한 나무들이 우거진 공원이 金씨집에 바로 붙어있다.
각종 화초들로 꾸며진 아담한 정원,침실 3개와 거실 2개짜리목조가옥,자동차 두대를 넣을 수 있는 별채 차고.전체면적이 2백50평인 金씨집은 다운타운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맑은 공기와 숲등 주거환경은 전원같이 쾌적하다.
대기업의 잘나가는 부장이던 金씨가 서울을 떠나 이민온 것은 지난 2월.자신을 돌볼 틈도 없이 직장생활에 쫓기다보니 2년전께 건강이 나빠졌다.비싼 과외를 시키며 뒷바라지해야 할 아이들의 교육문제도 걱정이었다.『꼭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끝에 내린 결론은 아파트를 팔고 예금등을 찾아 마련한 3억원을들고 이민길에 오르는 것이었다.
金씨는 요즘 직업없이 지내지만 사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오전 영어공부 외에는 주 2~3회씩 골프나 바다낚시를 즐긴다.정원 가꾸기와 집 손질도 색다른 재미가 있다.
삶의 질을 찾아온 이민자들에게 캐나다.호주.뉴질랜드는 거의 낙원처럼 보이는 사회다.이들 英연방국가들은 교육.의료.사회보장등 사회복지제도가 완비된데다 넓은 국토,풍부한 자원에 인구는 적어 여가생활.자연환경 등의 여건도 뛰어나기 때문 이다.
그래서 최근 어느 정도의 정착자금을 갖고 이민가는 사람들은 이들 나라를 가리켜 『천당에는 못미치지만 9백99당쯤 되는 것같다』고 말한다.
이들 국가는 18세이하에게는 우유값을 지급하고,실업수당.노인연금등을 실시하는등 각종 사회복지제도가 발달돼 있다.
교민들에게 특히 이민생활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은 자녀교육.고교까지는 의무교육으로 돈이 한푼도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재와 노트까지 무료다.고액과외나 입시지옥도 없고 대학교육도 큰 돈이 들지 않는다.
또 교육방식도 획일화된 주입식의 우리와는 달리 학생 개개인의적성과 창의력을 기르는 쪽으로 발달돼 학생들은 공부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누구나 『어느 하나만 잘해도 나는 이 사회에서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다.
지역사회교육 프로그램 또한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성인교육제도.주로 야간에 동네 고등학교 교실과 실습시설을 이용해 어학.개훈련.조리.사교댄스.에어로빅.기타연주.컴퓨터등 다양한 실기강습이 이뤄진다.
영어.낚시기법.목공제작등 세과목을 수강하며 최근 티테이블을 손수 만든 오클랜드 교민 박형진(朴衡鎭.45)씨는 『시간당 1천원도 안되는 수강료로 이처럼 실용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점이 놀랍다』고 했다.
천혜의 자연과 잘 보존된 환경,그속에서 즐기는 다양한 레저스포츠는 이곳 생활의 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모든 사람들이 한가지 이상의 옥외 스포츠를 즐기며 국가는 국민들이 부담없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여건을 잘 조성해 놓 고 있다.
골프의 경우 값비싼 사설골프장도 있지만 대부분은 공공용지여서관리비와 운영비만 입장료로 충당하기 때문에 연간 30만원정도의회비만 내면 언제든지 즐길 수 있다.
***하나둘 드러나는 장벽들 슬로프 길이만도 5㎞가 넘고 연중 6개월을 개장하는 밴쿠버의 휘슬러 스키장,캐나디언 로키의 수려한 경관속에서 즐기는 사슴사냥,바다 멀리 배를 타고나가 대형참치를 낚아올리는 게임 피싱,급류타기인 래프팅,요트,사이클링….듣기만해도 가 슴 설레는 각종 레저스포츠가 일상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역마다 한인골프회가 구성돼 있고 평일에도 골프장에는 한국교민들이 붐빈다.지역신문에는 가끔 「교민 아무개씨가 앨버트로스를했다」「클럽챔피언이 됐다」는 기사가 실리기도 한다.
국내에서 여가생활에 굶주렸던 교민들이 현지에서 엮어내는 에피소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호주 해안에서는 갈치가 잘 잡힌다.몸길이 2m가 넘는 갈치를 여러마리 잡아 집으로 가져가려다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길가에 버렸다가 벌금을 문 교민, 커다란 플라스틱통을 갖고가 토막낸 갈치를 가득 싣고 왔다가 보관문제로 부부싸움을 벌인 교민등….
한국에서 일과 공부와 경쟁의 노예가 되다시피 지내온 교민들에게 「제2의 고향」의 첫모습은 「인간답게 사는 세상」으로 비쳐진다.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곳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현지사회에 한걸음 더 접근해보면 하나 둘씩 장벽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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