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곳지금은>조선무인양성소 훈련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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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현재 국립의료원이 있는 을지로6가 18의79 일대는 조선시대무인(武人)들을 양성한 훈련원(訓鍊院)터다.
이곳은 조선조 5백년동안 병사들이 무예를 갈고 닦은 자리이자일제침략에 반발한 조선군인들의 항일운동이 점화된 곳이기도 하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체계적인 군대양성을 위해 태조원년(1392년)이곳에 훈련관(訓鍊觀)을 두고 매년 봄.가을두차례에 걸쳐 무과(武科)시험을 거행했으며 세조때인 1467년훈련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훈련원은 일제가 완전한 조선강점을 위한 전단계로 1907년「한일新협약」을 체결,군대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항일운동 진원지의하나가 된다.
그해 8월1일 일제가 이곳에 집합시킨 조선군대의 무장을 해제하는 도중 격분한 조선군인들은 일본군에 대항,무기고를 털고 무장봉기의 횃불을 올려 이후 전국 각지에서 격렬한 항일운동이 전개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1919년 3.1운동때는 많은 시민들이 이곳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경(日警)에 끌려가는 민족사의 아픔을 겪었다.
8천3백평 규모의 훈련원터는 일제강점기간중 전차차고와 부민병원등으로 사용됐고 해방후에는 중구시립병원으로 개칭됐다.
6.25동란을 겪고난 뒤인 58년12월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등 스칸디나비아 3개국의 원조로 시립병원은 메디컬센터로 개.
증축되었다.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시설과 의료진을 갖추었던 메디컬센터는 개원10돌을 맞은 68년10월1일 우리정부가 인수,국립의료원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奉華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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