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자로 본 중국 <17> 황제 거주지 ‘베이징 중난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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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위성에서 본 중난하이(左)와 자금성(紫禁城).

1949년 3월. 국민당과의 내전 승리를 앞둔 마오쩌둥은 ‘베이징 접수 후 어디에 거주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한다. 측근들은 금(金·1115~1234년)나라 이후 역대 황제가 사용했던 중난하이(中南海)를 권했지만 마오는 “나는 황제가 아니다”며 입주를 거부했다. 그런 그도 ‘황제’가 상징하는 절대권력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그해 9월 마오는 중난하이의 국향서옥(菊香書屋)으로 이사했다. 이어 중국 고위관료들이 잇따라 이곳으로 입주, 중난하이는 새 중국 설립 이후에도 ‘은밀한 권부’라는 황제시대의 전통을 이어가게 됐다.

중난하이는 베이징의 황궁인 자금성(紫禁城)서쪽에 있는 중하이(中海·사진 왼쪽 위)와 난하이(南海)를 일컫는다. 약 100ha (1ha=1만㎡)규모로 조성되어 있으며 절반은 호수다. 높은 담장으로 외부와 차단돼 있다. 북쪽 호수인 베이하이(北海)는 공원으로 조성돼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이들 명칭에 바다 해(海)라는 글자가 있지만 몽골어로 원래는 ‘정원’이란 뜻이다.

이곳에는 최고 지도자들의 숙소와 함께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정부)청사가 입주해 있다. 두 호수를 사이에 두고 지도자의 거주 공간과 당·정 기관이 흩어져 있으나 정확한 위치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중하이의 왼쪽에 있는 화이런탕(懷仁堂)은 지금도 고위 당·정 회의가 열리고 있다. 화이런탕의 북쪽에 있는 쯔광거(紫光閣)는 고위 지도자들이 외국 귀빈을 맞는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황제시대 때에도 그랬듯 중국공산당 핵심권력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중난하이의 담벼락 안쪽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라오바이싱(老百姓·일반 백성)들은 알 길이 없다.

한우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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