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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反이슬람 감정 번질까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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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발생한 대규모 연쇄폭탄테러 이후 중동 이슬람권은 고민에 빠졌다. 이번 마드리드 테러가 또다시 '9.11 후폭풍'과 유사한 결과를 초래할지 몰라 불안하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테러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무슬림들은 이번에 서구의 '반이슬람 감정'이 또다시 거세질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또 알카에다"=아랍 언론들은 마드리드 열차 폭파 사건의 전개와 전망을 보도하는 데 여념이 없다. 버려진 승합 차량에서 아랍어 코란 테이프가 발견되고 알카에다를 자처하는 이가 범행 배후임을 스스로 시인하는 e-메일과 비디오 테이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상당수 언론매체들은 이번 사건을 2001년 9.11사태와 비교하며 분석과 전망을 내놓았다. 범아랍 일간 알샤르크 알아우사트는 14일 사설에서 "이번 사건의 여파가 9.11테러의 후폭풍과 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자지라 방송은 "알카에다가 배후에 있다는 정보 및 증거가 잘못된 것이길 바란다"는 한 전문가의 말을 여러 차례 내보냈다.

이번 테러에 대한 이슬람권의 반응은 9.11테러 당시와는 상당히 다르다. 3년여 전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미국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알카에다라는 단체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일부 과격세력들은 "미국이 당했다"며 통쾌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열차 테러를 보는 대다수 아랍인은 '무슬림들의 소행'이라는 결론이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하필 이런 때에"=마드리드 사건 다음날 수백만에 달하는 유럽인들이 악천후 속에서도 테러규탄시위를 벌이자 상당수의 무슬림들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이집트의 알아흐람 전략문제연구소 무하마드 사이드 박사는 "9.11테러 당시보다 더욱 거센 분노를 표출하는 서구인들을 보며 가슴이 철렁했다"고 말했다. 아랍의 각계 전문가들은 이번 테러가 9.11 이후 유럽 및 서구에 팽배해진 반이슬람 감정에 기름을 부었다고 진단했다. 프랑스의 히잡(여성들이 머리를 가리기 위해 쓰는 일종의 스카프)착용 금지법 등 반이슬람적 움직임도 유럽의 다른 나라들로 급속히 번질 것으로 우려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의 마무리로 미국의 무력 보복이 이제는 끝날 것으로 생각했던 중동의 집권 세력들도 새로운 고민을 안게 됐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으로부터도 정치.사회, 그리고 이슬람 교육에 대한 개혁요구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라크 전쟁, 이.팔 분쟁 등 제반 중동 문제들에서 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들의 이해와 지지도 이젠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동 각국 정부는 일제히 마드리드 테러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동시에 각국은 각료회의.안보회의 등 비상대책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예고도 없이 시리아를 방문해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회담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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