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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시대의바둑 ③ 해외 보급 어디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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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독일 함부르크에 정착한 전 여류 국수 윤영선 4단이 독일 학생들에게 9줄 바둑판으로 바둑을 가르치고 있다.

서양 바둑은 70여 년 전인 1936년 일본의 대신 고야마 이치로와 독일의 수학교수 듀발이 ‘전보 바둑’을 두면서 그 실체가 처음 일반에 알려진다. 종전 후 총리가 됐던 고야마-듀발의 전보 바둑은 무려 52일을 끌었고 매스컴에 오르며 히틀러의 독일과 쇼와(昭和)의 일본을 가깝게 묶는데 기여했다. 또 유럽과 미국엔 이 무렵 바둑협회가 결성되고 수학자·심리학자·동양학자들이 게임이 아닌 연구 대상으로 바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국인 중에서 최초로 해외 보급에 나선 사람은 임갑(林甲)씨. 경기고 독일어 교사였던 그는 의사인 아내와 프랑스로 유학 갔다가 문득 바둑을 전도할 결심을 하게 되고 드디어 그곳 사람들이 볼 때는 희한하기 짝이 없는 ‘기원’ 간판을 파리에 내걸게 되었다. 아마 4단 실력의 그는 대학가에서 수많은 제자를 양성했고 ‘마스터’로 불리며 무적의 고수로 통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이르자 프랑스 바둑연맹 산하 전국 100여 개 바둑 클럽엔 임씨의 실력을 뛰어넘는 고수들이 속속 등장하게 됐다(나이 80이 넘어 그는 한국기원이 주는 바둑 대상(아마추어 기사상)을 받았다).

한국 최초로 외국에 나간 프로기사는 이창세 5단이지만 그는 바둑 보급을 한 것은 아니다. 62년과 63년, 국수전에서 당대 최고수 조남철 9단에게 도전하여 3대1과 3대2로 두 번 패배한 그는 65년 친구인 김인 9단이 조남철 아성을 무너뜨리자 바둑을 떠나 함부르크에 유학했고 섬유사업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뒀다. 78년 한독문화협회장이 된 이창세씨는 첫 사업으로 프로기사들을 초청, 유럽을 순회시켰고 볼가강의 유람선을 사 국수전 도전기를 초청하기도 했다.

미국엔 ‘올인’으로 유명해진 차민수 4단이 일찌감치 터를 잡았으나 주업은 역시 바둑이 아니었다. 차 4단은 미국프로기사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80년 유고의 한 나체촌에서 열린 유럽선수권전에선 한국과 중국 프로들이 처음 조우했고 외교가 없던 동독·헝가리·유고 등에서 한국 기사들은 외교 사절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또 바둑이 소련·체코·노르웨이에서 아이슬란드까지 보급되어 있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해외 바둑 보급은 최근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여류 국수를 4연패한 윤영선 4단은 2년 전 함부르크에 가 보급 활동을 하더니 아예 독일 남자와 결혼해 그곳에 눌러앉았다. 전화를 걸어보니 클럽이나 중·고등학교에서 강의하고 개인 레슨과 대회 참관 등으로 눈코 뜰 새 없다고 말한다. 강승희 2단(함부르크)과 아마 강자 홍슬기(베를린) 등이 말하자면 ‘독일 팀’이다. 미국엔 아마 강자 장비(시애틀), 조석빈(뉴저지)이 나가 있고 김명완 7단이 준비 중이다. 호주엔 이세돌 9단의 누나인 아마 강자 이세나씨가 남편과 함께 가 있고 안영길 6단도 호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해외 보급의 산실로 떠오른 명지대 바둑학과 출신들이다.

러시아에선 한국에서 프로가 된 스베타와 샤샤가 활동 중이다. 그러나 아직 바둑의 해외 보급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언어 장벽, 체계화되지 않은 보수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독일의 윤영선 4단은 “독일 여러 도시에서 많은 대회가 열리는데 한 달에 한두 번씩 대회에 한 번 초청받을 때마다 250유로를 받게 된 것도 극히 최근의 일이다. 수입은 생활비를 버는 정도”라고 말한다.

초창기 일본은 국가 지원으로 바둑을 보급했고 그래서 유럽인들은 ‘공짜’에 익숙해졌다. 이 바람에 후발 주자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 윤 4단은 바둑 그룹 지도에 1인당 30~40유로를 받는데 현지인들은 “피아노 개인 교습 비용과 비슷하다”며 혀를 내두른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장밍주(장주주 9단의 형) 8단이나 펑윈 8단처럼 강의와 개인 지도로 직장인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기사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명지대에서 제자들의 해외 보급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남치형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동남아의 태국·베트남·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 등은 물론 터키·이스라엘·우즈베크·아제르바이잔, 그리고 유럽의 세르비아·크로아티아·루마니아·체코 등 바둑을 새롭게 받아들인 나라들의 열기는 오히려 영국·네덜란드 등 기존의 바둑 강국(?) 못지않다. 남미의 브라질·아르헨티나·에콰도르·쿠바·멕시코 등에서도 크고 작은 국제대회들이 꾸준히 열린다. 초창기 태권도 보급 때처럼 강한 의지만 가진다면 한국 바둑 고수들이 활약할 개척지들은 거의 무한대다.”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는 지난해 정부로부터 바둑 세계화를 위한 지원금(2억5000만원)을 처음으로 받았다. 그러나 이런 지원금이 눈먼 돈이 되지 않고 ‘바둑 한류’를 전파하는데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좀 더 체계적인 조사와 계획이 필요하다.”

호주의 심리학자 캐서린 리즈가 바둑을 “위대한 지적 모험”이라고 갈파한 이래 바둑은 먼 나라 사람들에게 ‘탐색해보고 싶은 흥미로운 세계’가 됐다. 바둑은 이미 세계화의 동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으며 누가 제대로 된 계획으로 이를 이끄느냐만 남은 셈이다. 정부의 작은 지원도 바둑에선 큰 힘이 된다. 또 한국보다 훨씬 많은 중국 기사들이 동남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 활약하기 시작했고 해마다 그 숫자는 늘어가고 있다. 현재는 프로기사든 아마기사든 선진국만 선호하는 문제점이 있지만 동남아나 중앙아시아·남미 같은 바둑 낙후국들이 더 큰 잠재력을 지닌 채 대기 중이란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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