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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식회사 대장정] 9. 신발-솽싱그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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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자, 봐라. 'China Double Star'브랜드가 찍혀있지 않느냐." 중국 최대 신발메이커인 솽싱그룹(雙星集團) 왕하이(王海.63)사장은 1992년 9월 미 워싱턴DC에서 미국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던 중 갑자기 신고 있던 구두를 벗었다. 그리고 구두 속을 기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이같이 말했다. 미국 기자들이 "중국 신발왕인 당신이 신고 있는 구두는 당신 회사에서 만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성시순(生錫順) 그룹 부사장은 "당시 王사장은 미국 기자들의 질문을 '운동화나 만들 줄 알지 설마 구두까지 만들겠느냐'는 비아냥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王사장에게 '미국'은 라이벌이다. 그는 "중국의 경제력이 약해 미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또 "중국은 개발도상국이지만 미국과 싸운 나라는 중국밖에 없었다"고 믿는다. 生부사장은 "王사장은 늘 '미국과 비길 만한 힘을 갖자'고 강조한다"고 밝혔다. 王사장은 1960년대 후반 베트남전에 참전해 미군과 싸운 군장교 출신이다.

그러나 솽싱은 아직 미 나이키 등 세계적인 유명 신발업체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한다. 이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미국 시장에서 중저가 제품 취급을 받고 있다.'중국 부자'들도 외국 유명브랜드 신발을 찾는 편이다. 그러나 솽싱의 잠재력은 대단하다. 2002년 매출(57억위안)은 王사장이 처음 솽싱을 맡던 83년에 비해 146배 늘었다. 지난해 시장점유율은 14%로 중국 최대 신발회사로 성장했다. 또 "이제 미국시장에서 저가 제품이란 이미지는 벗었다"고 자부한다.

◇신발에서 도(道)를 찾는 기업=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 인접한 지모(卽墨)시에 있는 솽싱 신발공장. 6만평의 부지에서 연간 600만켤레를 생산하고 있다. 솽싱의 중국 내 20여개 신발 공장 중 중간 규모다. 그룹 본사가 있는 칭다오시 인근의 신발공장으론 유일하다. 지난달 10일 기자가 방문한 이 공장의 각 생산라인엔 시간대별로 합격률을 기록하는 게시판이 큼직하게 붙어 있다. 오후 3시쯤 이 게시판엔 아침부터 기록된 제품 합격률이 최저 99.1%, 최고 99.7%로 적혀 있었다. 공장 곳곳엔 직원들을 독려하는 간판이 있었다.'시장이 기업의 최고 지향이다(市場是 企業的最高領導)''제품과 사람의 품질은 마찬가지며, 사람의 양심과도 같다(質量等于人 品質量等于良心)' 등이다.

솽싱은 이를 '신발의 도(靴道)'라고 부른다. 生부사장은 "종업원들이 대부분 농촌 출신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직원 관리도 유교적이다. 공장은 1일 1교대로 오전 8시~오후 5시까지만 가동한다. 任공장장은 인본(人本)사상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춘절(春節)엔 직원들에게 선물을 한 보따리 안겨 귀향하도록 한다.

중국에선 유일하게 국가급 신발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기술개발에도 관심이 많다. 生부사장은 "굽 높이는 똑같지만 속을 덧대 키가 더 크게 보이는 구두도 여기서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새끼 악어 두 마리의 가죽으로 만든 켤레당 4200위안(72만원)짜리 고급 구두도 연구소 작품이다. 이 구두는 생산직 근로자 평균 임금 기준으로 6개월치에 해당하는 고가지만 한달에 수십켤레씩 팔리고 있다고 한다.

◇중국 최대의 제조업체가 목표=솽싱은 한국 신발업체들이 70~80년대 했던 고민을 하고 있다. 신발만으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生부사장은 "신발은 노동집약적 산업이라, 어느 정도 발전하면 이익을 내기 어렵다고 생각해 5년 전부터 다른 업종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역점을 두는 사업은 타이어다. 중형트럭.농업용 트랙터 타이어에선 중국 1위며, 타이어 전체론 중국 5위업체다. 그룹 내 매출액 비중도 50%로 신발(40~45%)을 앞질렀다. 솽싱은 또 의류와 스포츠용품에도 진출했다. 세계 최강인 중국 여자축구와 육상 대표선수들에게 공급한다. 生부사장은 "신발.타이어.의류.기계 등 4대 핵심산업으로 중국 최대의 제조업체가 되자는 게 王사장의 목표"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영욱 전문기자(팀장), 김형수.최형규.김경빈 기자, 친훙샹 중국 베이징대 교수, 박승록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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