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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승부사적 결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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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결승 3번기 제2국>

○·박영훈 9단(1패) ●·이세돌 9단(1승)

제14보(170~182)=사방을 미결로 놔둔 채 휙 방향을 튼 이세돌 9단의 흑▲가 사납고도 끈질기다. 국면은 복잡해지고 전선은 자꾸 넓어지고 있다. 웬만한 실력자라면 수가 흐릿해지기 시작하고 승리가 멀어지는 느낌에 초조해지는 시간이다. 170으로 받을 때 171로 젖히겠다는 게 흑▲의 뜻. 175(●의 곳)로 패를 따내며 동태를 살피니 백도 골치가 아파졌다.

대개의 경우 ‘참고도’ 백1로 두 점을 살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흑은 2를 선수하고 4로 머리를 내민다. 5로 잡으면 6의 연결. 흑 대마는 A와 B를 맞보기로 살아 있다. 백집이 너무 많이 깨져 계가가 단박에 이상해진다.

박영훈 9단은 이 대목에서 통념을 뛰어넘는 빛나는 선택을 했다. 176으로 먼 곳의 두 점을 잡아버린 것. 해설자들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곧 이 수가 내포하는 승부사적 결단에 감동하며 내심 ‘박영훈은 역시 고수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176은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역끝내기 10집이 넘고(이제 집으로는 따라올 수 없다), 둘째 상대가 아껴두고 있는 권리(지뢰)를 제거했으며, 셋째 복잡한 상황을 간결하게 축소시켰다. 깨끗한 승부사적 결단이었다.

하지만 겁은 난다. 흑이 177로 좌변부터 가둔 뒤 181로 끊자 또 천지 대패가 났다. (182=172)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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