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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럼>공직사회의 無菌化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대형 부실(不實)사고가 터질 때마다 으레 공무원의 비리가 문제된다.공사의 인.허가과정에서 관련 공무원의「봐주기」가 작용해거액의 뇌물과 함께 부실의 원인을 제공한 사실이 들통나기 때문이다. 다리붕괴등 과거의 큰 사고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이번 삼풍백화점의 붕괴에 따른 대참사가 이를 총체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그 어려운 땅의 용도변경을 손쉽게 해주고,건물주가 설계를마음대로 바꿔 증.개축하도록 하고,준공검사도 받기 전에 백화점의 개점(開店)을 허용하는 과정을 거칠 때마다 엄청난 뇌물이 제공된 것이다.이런 비리가 하나씩 밝혀지면서 전.현 직 구청장이 구속되고 조사를 받는가하면 주모자급 실무자들은 구속이 겁나줄행랑을 치고있다.볼썽 사나운 꼴이다.
삼풍件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이권(利權)이 조금이라도 개재된 부서라면 늘 부정의 소지를 안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부서는 말할 것도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검찰등 일부 사정기관까지 부패해 있다는 것이 일반 적인 인식이다. 사정강화다,개혁이다 하고 고위층에서 아무리 엄포를 놓아도뿌리깊은 공직자의 비리는 좀체 개선되지 않고 있다.시간이 흐를수록 비리의 수법은 오히려 더 다양해지고 대담해지는 경향마저 띠고 있다.
문민정부들어 개혁이 그렇게 강조되고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공무원의 부정은 줄기는커녕 더 늘어났다.
대검(大檢)이 밝힌 94년 한햇동안 권리남용.수뢰등 직무와 관련된 공무원의 범죄는 전년보다 무려 39.5%나 증가한 것으로나타났다.이는 결국 공직자의 비리가 곳곳에 만연돼 있음을 읽게해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공직자가 다 부정한 것은 결코 아니다.깨끗한 공직자상을 지키려는 공무원이 더 많다.이들 가운데에는 맞벌이 생활을 하는가 하면 약국.미장원.미니슈퍼등 간단한 부업을 하면서 떳떳한 공직생활을 하는 공무원이 의외로 많다.
문제는 소위 노른자위라는 이권과 관련된 부서에 장기간 자리를차지하면서 각종 비리를 일삼는 공직자들이 문제인 것이다.이들 가운데는 돈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손을 뻗을만큼 비리의 수렁에 빠져있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들 비리공직자일수록 상급자와 잘 연결돼 있어 부정의 공범자가 되곤한다.자영업자나 재계(財界)등에서 행정규제 완화를 그토록 하소연해도 쉽사리 풀어주지 않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들의 이해와 깊은 관계가 있다.말로는 업체간의 과당경쟁 이니 시장질서 문란등의 이유를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규제를 풀어주면「돈줄이 끊어진다」는 공무원들의 잘못된 피해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직자의 비리를 근절할 대책은 없는가.현실적으로 참어려운 문제다.사정이나 개혁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공직자의 생활문제와 신분보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개선되기 힘든 문제다.
우선 공무원의 봉급을 크게 올려 생활을 안정시켜야 한다.그러나 이 문제는 세금을 더 거둬 예산을 대폭 증액해야 하니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남들이 다 하는 과외등 私교육비 조달,자동차운영등 문화생활을 하려면 공무원봉급으로는 어림도 없다.여기에서 부정의 씨앗이 싹트는 것이다.따라서 자녀교육에 걱정없도록 교육제도가 개선되고 공무원의 기본생활이 되도록 별도 대책이 뒤따라야 부패가 줄어들 수 있다.공무원 가정에서 간단한 부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 침해주는 것도 한 방안이될 것이다.이와함께 능력있는 사람은 그에 상응한 대접을 받게 하고 정치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게 하는 신분보장도 뒷받침돼야 한다. 싱가포르의 어는 사회학자는 공직사회에는 긍정적 부정과 부정적 부정이 있다고 한 적이 있다.전자는 봉급만 갖고 생활하기 어려운 공직자가 불가피하게 업무의 대가로 받은 뇌물로 살아가되 살림에 여유가 생기면 양심상 더 이상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후자는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그 힘을 이용,치부하는 경우인데 이것이 만연되면 그 나라는 망한다는 주장이다.우리 공직사회도 최소한 전자와 같은 방향으로라도 개선됐으면 한다.여하튼공직사회의 무균화(無菌化)는 하루아침에 될 일이 아니다.
법을 강화하면서 단계적으로 풀어갈 과제인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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