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수기-무턱대고 달려가는式 보다 체계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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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중앙일보와 함께 사랑의 일기장 보급운동을 펴고있는 인간성회복추진협의회(인추협)고진광 사무총장이 삼풍백화점 지하구조작업등 자원봉사수기르 보내왔다. 수기내용을 요약한다.

<편집자 주> 29일 오후 7시쯤 밖에서 아는 사람으로부터 사고소식을 듣고장난이거니 생각하며 집에 왔다.그런데 강남성모병원 수간호사인 아내가 이미 비상출동하고 없었고 TV는 사고소식을 계속 토해내고 있었다.
순간 인추협에서 자원봉사를 하고있는 우리 회원들에게 연락을 시작했다.그날 오후 11시 강남성모병원에 도착하니 회원 10여명이 이미 컴퓨터와 프린터를 준비해 부상.사망자 명단과 병원 배치,전화번호등을 알려주고 있었다.
컴퓨터로 하는 밤샘작업은 레이저 프린터로 수없이 각종 정보를뽑아내도 희생자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었다.희생자 가족들은 우리를 정부대책본부에서 나온 것으로 알았는지화를내고 심하게 짜증냈다.이내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자원봉사의 정신으로 견뎌낼 수 밖에 없었다.
사고 이틀째인 30일 병원 영안실에 들렀다가 오후 6시30분사고현장에 도착,백화점 남관(B동)쪽을 택해「두더지 작전」에 들어갔다.
용접공 윤상춘씨등 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헤치고 지하3층으로 내려갔다.망치로 벽을 두드리며 생존자를 찾았다.갑자기『살려주세요』라는 사람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사람수대로 두들겨 달라』는 우리의 요청 에 갇혀있던이들은 여섯번을 두들겼다.우리는 기쁨과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즉각 119구조대에 알렸다.
구조대가 용접기와 쇠톱으로 철근을 자르고 망치로 두드려 파내는 작업을 했다.다음날 새벽 4시쯤 임혜진씨등 세사람의 생존자구출에 성공했을 때 뿌듯한 보람을 느꼈다.구출작업은 계속됐다.
혹시 살아있을 생존자들을 향해『살아있으면 대답하 세요』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우리 자원봉사자들의 절규(?)는 2일까지 계속됐다. 나는 2일 새벽3시 흙먼지로 작업복처럼 변해버린 양복차림으로 사고현장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그리고 이후 자원봉사의 무대를 병원으로 옮겼다.
며칠간 자원봉사자로 구조활동을 도우면서 수도 서울의 대형 백화점이 무너져 내렸다는 믿지 못할 일 말고도 난감하고 서글펐던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사고에 대한 대처가 늦고 지휘체계가 없었던 점,전문적인 구조장비의 부족등 비효율적이고 혼란스러운 재난구호체계 때문이다.방송을 통해 랜턴.장갑.곡괭이.유압절단기.산소용접기등 구호물품을요청하는가 하면 자원봉사자나 구조대의 식사를 자 원봉사자의 협조를 받아야 가능한 점도 이해하기 힘들다.사고불감증에 걸린 사회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러나 국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대형참사의 절망속에서도 따뜻한인간애로 절망을 뛰어넘은「인간승리 드라마」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리라 믿는다.
구조 지휘체계가 엉망인 가운데서도 자원봉사자들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따뜻한 마음과 행동은 수많은 생명을 건져내는데 도움을주었다.그래서 삼풍백화점 사고현장은 자원봉사의 정신이 붕괴의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의 싹을 틔운 곳이기도 했다.
앞으로 자원봉사가 무턱대고 달려가는 식에서 탈바꿈해 체계적으로 다듬어지고 조직화된다면 그 위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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