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스살롱>全晟雨 보성교교장 부인 김은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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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 베갯싸개에 놓인 수(繡)를 좀 보세요.꽃마다 다 뿌리가달렸죠? 조선왕조의 공주들은 이상하게 명(命)이 짧더래요.그래서 부디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공주 옷에는 꼭 뿌리까지 수를 놨대요.』 꽃수도 고왔지만 수놓은 천에 매듭을 달아 베갯싸개를 만든 장본인 역시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게 고운 모습이었다.전영우(全暎雨.61)보성고등학교장겸 간송미술관장 부인 김은영(金銀暎.53)씨.『이건 연봉매듭,저건 가지방석매듭』하고 설명 에 열을 올리는 金씨는 지난달 가나화랑에서 30년 가까운 매듭작업 동안 첫 개인전을 연 흥분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했다. 『강남주부들에게 이런 우리 것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金씨의 매듭작품은 유난히 예스럽고 은은한 멋을 풍기는 것이 특징.서울성북동 간송미술관과 한 울타리안에 자리잡은 단층집 거실도 그런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벽난로 곁에 걸 린 남편의 동양화 한 점,빛바랜 헝겊소파 옆에 놓인 오래된 토기 한 점.꾸민 데 없이 자연스레 일상에 젖어든 전통미를 느끼게 했다. 金씨는 그런 안목을 일제때 우리 문화재를 모으는 데 돈과 정성을 아끼지 않았던 시아버지(澗松 全灐弼)뿐 아니라 「모던한」시세계와는 달리 골동품 보는 눈이 높았던 친정아버지(詩人 金光均)에게서 물려받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워낙 따랐어요.아버지 따라 인사동에 자주 가곤 했는 데 이런 저런 구경을 하다 보면 매듭술 달린 노리개같은 것도 사주시곤 했지요.』시인과 화가는 잘 통한다고 했던가.남편은 『장인이 좋아서 결혼했다』고 말할 정도로 서화를 보는 안목이 통했다고 한다.
친척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서울대와 이대에서 각각 미술을 전공한 데다 이런 집안 분위기까지 비슷해 더 쉽게 가까워졌다.
1년 남짓한 약혼시절 동안 TV에서 매듭을 보고 매료된 金씨에게 무형문화재 매듭선생님을 소개시켜 준 것도 남편 이었다.
『실은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더 하고 싶었는데….』맏며느리이자 2남2녀의 어머니인 金씨는 번번이 남편의 반대에 부닥쳤다.『아이들을 키우면서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게 매듭밖에 없었다』는 말에는 그런 남편에 대한 원망도 은근히 묻어난 다.
金씨는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마흔 일곱의 나이에야 서울여대공예과 대학원에 진학,뒤늦게 공부욕심을 채웠다.서울대 미대에서강의를 하다 학교형편 때문에 교장자리를 맡은 남편도 작년에 회갑기념전을 열었으니 돌아보면 두 내외는 바라던 것을 꾸준히 이룬 셈.『서로의 작업에 영감을 주는 동반자』라는 金씨부부는 몇해전부터는 이집트.러시아로 함께 여행을 떠났던 동반자이기도 하다. 결혼 초 『가장 소질이 있는 한 아이는 그림을 시키자』던두 사람의 약속은 서울대 서양화과 대학원에 재학중인 둘째 딸 덕분에 지켜졌다.경영학을 하는 막내를 빼고 다른 두 자녀는 집안내력을 대물림이라도 하듯 각각 한국미술사.중국사를 전공하고 있다. 〈李后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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