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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수지女史 연금해제 배경-인권탄압 지원끊겨 경제難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미얀마 군사정권(국가법질서회복평의회.SLORC)이 이나라「민주화의 꽃」아웅산 수지(50)여사를 석방한 것은 우선 더이상 그녀를 잡아둘 법적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89년7월20일 시작된 그녀에 대한 가택연금은 그간 수차례에걸친 법개정에도 불구하고 만료기한이 6년으로 오는 19일 종료된다. 그간 국제사회로부터의 온갖 설득과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미얀마 군사정권이 이처럼 수지여사를 석방한 것은 무엇보다도 더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경제난 때문으로 풀이된다. 오랜 군사독재와 사회주의 시험의 실패로 가뜩이나 어려운이나라 경제는 지난 88년 민주화 시위 유혈진압과 89년 수지여사의 연금으로 외부의 지원마저 끊겨 최악의 상태를 맞았다.
최근 다소 나아지기는 하지만 92년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은 2백50달러에 불과,아시아는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최빈국 수준이다. 정권유지를 위해서는 이러한 경제난의 해결이 시급하고,이를위해선 외국자본의 유치가 필수적이지만 많은 나라들이 수지여사의석방을 투자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워 군사정권 당국을 곤혹스럽게 해왔다.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해 미얀마 군사정권은 최근 외국인의 투자규제를 완화하고 입국비자의 기한을 1주일에서 4주일로 연장하는등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96년을「미얀마 관광의 해」로 정하고 외국의 자본을 유치,호 텔이나 위락시설에 대한 대대적인 공사에 착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노력도 결국 수지여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헛수고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미얀마 당국이 뒤늦게나마인식,그녀에 대한 연금을 해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얀마 당국이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는 하지 않고 있지만 수지여사가 본격적인 반독재투쟁을 재개할 경우 그녀를 다시 연금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얀마 독립의 영웅 아웅산장군의 장녀로 태어난 그녀는 88년영국에서 귀국해 민족민주동맹(NLD)을 결성,반독재투쟁의 선봉에 섰으며 연금중인 9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세계적 민주인사로부상했다.
〈劉載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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