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앙아시아를가다>1.제2의 아프간 타지키스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카스피해에서 파미르고원에 이르는 방대한 중앙아시아는 코카서스의 아제르바이잔을 포함,이슬람교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6개 공화국이 공존하는 곳이다.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대왕의 동방원정에서지난 세기 대영제국의 아프간전쟁에 이르기까지 중 앙아시아는 열강들의 헤게모니 각축장이 돼왔다.이제 막 공산주의 제국의 울타리를 벗어나 새로이 민족국가 건설에 나선 중앙아시아 나라들의 갈등과 꿈을 현지르포를 통해 알아본다.
파미르고원속의 타지키스탄.평지에서 바라다보이는 7천m 고봉들은 한여름에도 눈을 이고 있다.사랑과 평화를 설파했던 인류 최초의 선지자 차라투스트라의 고향인 이곳에 지금 포연이 가득하다. 『러시아군대가 철수하면 타지키스탄은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됩니다.』수도 두샨베의 외무부에서 기자를 만난 탈박 나자로프 외무부장관은 2년 넘게 계속되는 타지키스탄내전에 대해 이렇게 전망했다.집무실에는 소련시절의 낫과 망치 대신 독립국 타 지키스탄을 상징하는 삼색의 이슬람기가 펄럭이고 있었다.불과 2년전만 해도 이슬람민족주의자들의 시위 현장이던 샤히돈(순례)광장에는 기관총으로 무장한 러시아군인들이 서있고 인근 이란 대사관 정문에는 호메이니의 사망 6주기 행사에 참여할 사람들이 테헤란행 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길에는 울긋불긋한 하렘바지의 아낙들이 쪼그리고 앉아 빵을 팔거나 1년동안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지못한 타지키스탄인들이 가재도구를 내다파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소련의 붕괴로 독립을 찾은 타지키스탄이 내전에 휩싸이게 된 것은 92년.이슬람주의자들이 92년 5월 라흐몬 나비예프 공산정권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했다.그러나 92년 12월 러시아의지원을 받은 에모말리 라흐모노프(현 대통령)가 이끄는 공산군이이슬람세력을 아프가니스탄으로 몰아냄으로써 내전은 시작됐다.아프가니스탄으로 퇴각한 이슬람세력은 국경에서 남쪽으로 60㎞ 떨어진 탈로칸에 군사거점을 확보하고 게릴라전을 펴고 있다.
타지키스탄사태에는 주변국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타지키스탄은 舊소련중 러시아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가장 높은 국가다.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과 달리 타지키스탄은 석유등 에너지자원과 식량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내전은 러시아 의 군사개입을 초래해 타지키스탄은 2만5천명의 러시아병력이 주둔하는 실질적인 러시아의 위성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타지키스탄반군은 국경에서 60㎞ 떨어진 탈로칸에 기지를 두고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의 지원을 받고 있다.타지키스탄에 대한 주변국의 이해는 경제와 깊은관계가 있다.타지키스탄는 舊소련중 첫번째 은 생 산국이자 세번째 면화공급국이다.국토의 90%가 넘는 파미르고원에는 금.루비등 희귀원석이 풍부하며 암염이 산을 이루고 있다.특히 북부 후잔트지역에 매장된 우라늄은 핵개발에 대한 관심이 많은 중동국가들의 구미를 끌기에 충분하다.또한 아 프가니스탄 접경 파미르고원의 누레크수력발전소는 2백70만㎾의 생산능력을 가진 중앙아시아 최대규모의 발전소로 舊소련국가들은 물론 아프가니스탄의 주요전력 공급원이다.
이스라엘 이스마일로비치 경제부 차관에 따르면 최근 타지키스탄에 대한 이란의 투자가 활발해지고 있다고 한다.이란은 중동국가중 최초로 타지키스탄과 경제협정을 체결,가장 많은 투자조사단을파견하고 있으며 두샨베~테헤란간 항로개설에 합의 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지키스탄이슬람반군의 주요 배후세력은 이란이다.올 2월 반군 최고지도자 알리 아크바르 투라존조다의 테헤란 방문 직후 이슬람정당 당수 압둘라 누리는 자신들이 「중동지역 어느 국가」의 지원을 받고 있음을 시인했다.
타지키스탄사태는 인근 중앙아시아국가들에「이슬람 도미노」공포를불러일으키고 있다.이슬람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대통령은 자국의 백만 타지키스탄인들을 의식,국경을 봉쇄했다.
인구 5백40만명의 타지키스탄은 터키계민족으로 구성된 다른 중앙아시아국가들과 달리 이지역에서 유일한 페르시아 민족이다.아시아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는 흰 피부와 큰 눈을 지닌 유럽인의모습을 하고 있다.국민 대부분은 같은 말을 쓰는 이란에 친근감을 느끼며 상대적으로 反러시아정서가 강하다.이러한 이유로 타지키스탄 인구의 8%를 차지하던 40만명의 러시아인들 대부분은 지난 2년 타지키스탄을 떠났다.산업계층을 구성하던 러시아인구의유출로 경제사정은 더욱 악화돼 9 4년 GNP는 5억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며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있다.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교육열은 높다.기말고사가 끝나는 날 두샨베의 학부모들은 음식을 만들어 학교에 가지고 가는게 관습으로 돼있다.학교 정문에서 만난 나르기스 아지나예바(29)여인은 만두와 플로프(기름밥)를 손에 들고 있었다.국교 4년인 아들이 만점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두샨베의 한 경제전문가에 따르면 이란에서 아프가니스탄과 중국신장에 이르는 2억명의 새로운 이슬람문화경제공동체가 형성되고 있다.최근 이란은 타지키스탄남부 파미르에서 아프가니스탄을 통해이란의 벤데르항에 이르는 도로건설을 제의,러시 아로 향한 타지키스탄의 출구를 페르시아만으로 돌리려는 구체적 계획을 모색하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의 한 정치인은 『향후 10년 타지키스탄은 중앙아시아에서가장 뜨거운 지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타지키스탄은 유러시아대륙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관계로 동서가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다.지난세기 이 지역은 아프가니스탄국경을 기점으 로 러시아제국과 대영제국의 충돌지점이었으며 금세기엔 서방과 공산주의 소련의대치선이었다.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은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을 내세워소련과 싸웠고 이는 오늘날 타지키스탄사태를 야기한 간접적 원인이 됐다.현재 타지키스탄은 소련붕 괴후 새로이 형성된 이슬람권과 러시아가 대치하는 최전선이다.과거와 달라진 점은 서방이 더이상 이슬람의 지원자가 아니라는 점이다.그러나 파트너는 바뀌어도 이 지역 패권을 겨냥한 파워게임은 계속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