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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관치 없애 금융산업 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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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명박 대통령은 31일 “한국의 금융산업은 오랫동안 금융기관으로 불리며, 권력기관 역할을 해왔다”며 “관치를 배격해 민간 주도로 금융산업을 크게 일으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금융위원회의 업무보고에서다.

이 대통령은 관치금융의 폐해에 대해 작심한 듯 비판했다. 그는 “그동안 금융활동의 기본은 철저한 담보를 잡거나 철저한 관치 두 가지였다”며 “그래서 부실한 경영이 나왔고, 많은 국가적 손실을 끼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융이 변해야 금융산업 자체가 달라질 수 있고, 일반 기업들도 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그동안 금융감독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만큼 금융위원회는 철저하게 변화해야 할 것”이라며 “점진적 변화가 아니라 일시에 개혁해야 그 개혁을 체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금융위원회는 각종 금융규제의 완화, 글로벌 금융회사의 육성, 감독기구의 변화 등에 대해 보고했다. 1년 내에 처리할 단기 과제도 있지만 중장기 과제도 많았다. 금융위 관계자는 “대통령이 금융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인 만큼 과제 추진 속도가 한층 빨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감독기구·금융공기업에 칼바람=금융위는 민영화를 추진 중인 산업은행 총재에 국제 경쟁력을 갖춘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하겠다고 밝혔다. 임승태 금융위 사무처장은 “외국인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해 11월로 임기가 끝나는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는 임기 만료 전 퇴임 가능성도 커졌다.

이에 앞서 이 대통령은 “금융정책을 만든 공직자가 일선 금융기관의 장이나 은행장으로 가는 등 민간에서 인재가 클 수 없게끔 돼 있었다”며 관료 출신의 낙하산 인사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또 “산업은행이 지금은 일반은행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여전히 은행장을 총재라고 부른다”며 “자신을 총재라 부르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위는 또 금융감독원 인력의 4분의 1을 외부 전문 인력으로 충원하겠다고 보고했다. 금감원과 예금보험공사의 예산도 10% 이상 깎을 계획이다. 금융감독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대통령의 지적에 대한 화답인 셈이다. 현재 금감원 임직원 1700여 명 중 14%인 230여 명이 공인회계사 등 외부 전문인력이다. 금융위의 계획이 현실화되면 200명가량의 임직원을 외부 인력으로 교체해야 한다.

금감원 인사·조직이 바뀌면 캠코·예금보험공사·신용보증기금 등의 산하기관이나 금융 공기업에도 연쇄 반응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금산분리 등 금융규제 완화=금융위는 기업(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인수를 제한한 금산분리 원칙과 관련, 연내에 연기금과 사모펀드(PEF)의 은행 지분 소유 한도를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산업자본의 직접적인 지분 소유 한도(4%)를 얼마만큼 높일 것인지는 6월까지 결론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여러 가지 계획을 재벌 회사와 관련지어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그런 것 때문에 위축되지 않고서도 일을 명확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산업자본의 4% 소유 한도가 연내 10%까지 높아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보험·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회사가 지주회사를 설립하기도 쉬워진다. 각종 규제가 완화되는 동시에 비은행 금융지주회사가 제조업체나 서비스업체 등 비금융 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도 있게 된다. 이에 따라 삼성·동양·교보·한화 등 금융회사를 많이 거느린 대기업을 중심으로 금융지주회사 설립이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주회사를 설립하면 각종 세제 혜택을 받는 동시에 기업 투명성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다”며 “다만 비은행 금융회사의 경우 지분 관계가 복잡한 것이 지주회사 설립의 걸림돌”이라고 설명했다.

김준현·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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