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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또 망신 … 나흘 지나 수사 착수 ‘강력범죄 불감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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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명박 대통령이 3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경찰서를 방문해 초등학생 유괴미수사건에 소홀히 대처한 경찰의 자세를 질책했다. 이 대통령이 이기태 서장의 배웅을 뒤로하고 화가 난 표정으로 경찰서를 떠나고 있다. [사진=김경빈 기자]

경찰이 또다시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이혜진(11)·우예슬(9)양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경찰의 강력사건 불감증을 다시 한번 여실히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고양시 초등생 폭행·납치 미수사건 수사를 지켜본 경찰청 고위 간부는 31일 “이명박 대통령의 질책 이후 몇 시간 만에 범인을 잡긴 했지만 현장 출동부터 수사 착수까지 모든 과정이 엉망이었다”고 탄식했다.

◇“수사의 ABC 어겨”=사건 당일 출동한 대화지구대 경찰관들은 범인이 초등생 A양을 마구 때리는 장면이 선명하게 담긴 CCTV를 확보했다. 그러나 ‘술 취한 사람이 어린이를 때렸다’며 별것 아닌 사건으로 보고했다. 지구대는 다음날인 지난달 27일 일산서로 사건을 넘겼다. 같은 날 일산서는 폭력1팀에 사건을 배정했지만 다른 사건들에 밀려 처리되지 않았다. 다음날 수사팀이 비번이라는 이유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나흘이 지나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한 수사 간부는 “‘현장, 피해자, 목격자에 충실하라’는 수사의 ABC를 경찰이 어긴 꼴”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경찰의 이 같은 무사안일한 대처는 강력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고질적으로 반복됐다. 혜진·예슬양 살해사건의 범인 정모(39)씨의 집은 이들 어린이의 집에서 40m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1월 경찰은 정씨를 탐문 조사했으나 특별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한 채 넘어갔다. 정씨가 용의선상에 다시 오른 것은 실종 80일 만에 이양의 시신이 한 예비군에게 발견되고 나서다.

2007년 4월 실종 40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제주 양지승양의 살해범 송모(49)씨는 전과 23범으로 아동 납치 미수 전력도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송씨를 ‘성폭력 전과가 없다’는 이유로 1차 용의선상에서 제외했었다.

공조 수사 실패도 되풀이되고 있다. 서울 창전동 네 모녀 피살사건의 수사를 맡은 마포경찰서는 뒤늦게 전남경찰청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다. 당시 전남경찰청 역시 전직 프로야구 선수 이호성(41)씨를 수배 중이었다. 전남경찰청 관계자는 “이씨를 공개수배하기 전까지 서울의 수사팀이 내려온 줄도 몰랐다”고 밝혔다.

◇수사 기강 해이=경찰의 이 같은 난맥상은 범죄 검거율의 감소로 이어졌다. 대검에 따르면 1999년엔 95.3%까지 치솟았던 범죄 검거율이 2006년 85.8%로 떨어졌다. 특히 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 등 5대 강력 범죄의 검거율은 99년 91.1%에서 2006년 72.3%로 급감했다.

노무현 정부와 당시 경찰 수뇌부가 피의자의 인권 보호에 치중하는 치안정책을 펴는 바람에 일선 수사기관의 수사 의지를 꺾어놨다는 분석도 나온다.

글=천인성·장주영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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