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신이 내린 직장’에서 ‘공공의 적’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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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감사원이 발표한 공기업 예비감사 결과를 보면 기가 막힌다. 해당 기업들은 공기업이 아니라 복마전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공익사업 하라고 혈세에, 독점까지 보장했더니 감시 소홀을 틈타 회사야 죽든 말든 직원들끼리 배를 불렸다. ‘신이 내린 직장’에서 ‘공공의 적’ 노릇을 했다.

석탄공사는 허위문서까지 만들어 부도위기의 건설업체에 수천억원을 대출해 주었다. 증권예탁결제원은 특정 직원을 채용하려고 시험점수를 조작했고, 마사회는 시간외 수당을 기본급으로 바꿔 직원들 배를 불렸다. 석유공사는 구조조정을 하는 척하면서 편법을 동원, 간부 수를 오히려 늘렸다.

예비감사 결과가 이 정도니 본감사에서 어떤 비리들이 드러날지 생각하기도 끔찍하다. 도대체 우리나라 공기업들에서 청렴성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정권 교체기마다 공기업 개혁 과제가 단골 메뉴로 등장했지만 지금껏 본받을 만한 공기업이 나왔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국제투명성기구의 ‘2007년 부패인식지수 조사결과’를 보면 한국은 112개 국가 중 43위로, 2005년 40위, 2006년 42위 등 해마다 뒷걸음을 치고 있다. 공기업들의 부패가 한몫하고 있다. 이런 공기업들을 언제까지 혈세로 먹여 살려야 하는가.

독버섯 같은 공기업 비리를 척결하는 처방전은 민영화와 구조조정이다. 새 정부는 이 일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증시 상황 등을 이유로 미적거릴 일이 아니다. 민간이 할 수 있는 분야는 모두 민영화시키고 당장 어려운 분야는 비슷한 성격의 기관끼리 통폐합해야 한다. 차제에 공기업 감사시스템도 단단히 손을 볼 일이다. 도대체 이 지경이 되도록 상급 감독관청은 무얼 했으며, 내부 감사부서는 손을 놓고 있었단 말인가. 경고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던 감독기관장에 대한 징계수위를 대폭 강화하고, 내부고발자제도를 확대하는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

국민은 ‘영혼이 없는 공무원’ 못지않게 ‘영혼이 타락한 공기업 직원’이 이 땅에서 퇴출되길 간절히 바란다. 새 정부가 공기업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