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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바루기] 귀가 번쩍 트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6면

“말을 잘하는 비법은 무엇일까?” 신문에 ‘최고의 화술을 갖춘 경영 컨설턴트’란 글이 실릴 정도로 명연설가였던 데일 카네기에게 사람들이 비결을 물었다. “대화의 기술이 따로 있나요? 귀가 번쩍 트이는 말들이라도 늘어놓는 건가요?”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상대방의 말을 정성껏 들어 주고, 가끔 내 의향을 물으면 진심으로 답변해 줄 뿐입니다. 경청이 비법인 셈이죠.”

카네기의 일화에서처럼 ‘들리는 소리에 선뜻 마음이 끌리다’는 뜻으로 “귀가 번쩍 트이다”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하지만 이때는 “귀가 번쩍 뜨이다”라고 해야 어법에 맞는 문장이 된다.

“아기들은 보통 출생 후 3~4일이 지나면 귀가 트여 소리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바스락대는 소리에 곤히 잠들어 있던 아이의 귀가 트였다” 등도 잘못 사용한 경우다. 각각 처음으로 청각을 느끼다, 무엇을 들으려 청각 신경을 긴장시키다는 의미로 쓰였으므로 ‘귀가 뜨여’ ‘귀가 뜨였다’로 고쳐야 한다. 준말인 ‘띄다’를 활용해 ‘귀가 띄어’ ‘귀가 띄었다’라고 표현해도 된다.

‘트이다’는 막혀 있던 게 통하게 되다(탁 트인 벌판), 답답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다(속이 확 트이는 기분), 생각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되다(문리가 트인 아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게 되다(시원하게 트인 목청)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물리적으로 닫혀 있던 귀가 열려 무엇인가를 듣게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은 ‘뜨이다’이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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