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화유산을찾아서>19.금동약사여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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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마국 보스턴미술관은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동양미술의 보고(寶庫)다.미국 양키의 본고장인 이곳은 독립이후 신생 미국의 선진화를 위해 세계 곳곳에서 미술품을 모아들이기 시작했다.그중 아시아권에 대한 관심은 일본에서 시작됐 다.일본의개항과 더불어 이곳 출신 학자들이 일본에 들어가 고고학발굴은 물론 미술품 수집에 열을 올렸다.20세기 초 일본인 오카쿠라 가쿠조(1862~1913)가 큐레이터로 활약,일본은 물론 한국.중국.동남아로 영역을 넓혀갔다.그런 덕에 보스턴미술관은 수장품의 가짓수는 물론 가치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시리즈 첫회에 소개한 고려시대의 「은제도금 주전자와 바리」도 보스턴미술관의 것이다.더구나 이제 소개하려는 「금동약사여래상(金銅藥師如來像)」은 국내에서도 같은 것을 찾아보기 힘든 완벽한 불상으로 일찍부터 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는 말처럼 동양의 불교미술 가운데 우리의 불상들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첫눈에 알아볼 수 있다.우선 그것은 불상이 단순히 예배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스승이자 이웃이라는 인상을 지니고 있 기 때문이다. 보스턴미술관도 이런 점을 외면하지 않고 이 불상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약사여래」라 표기하고 있다.소장처의 자부심만큼이나한국 불상에 대한 독자성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 불상의 원적지에 대해서는 미술관측과 국내학자 사이에 이견이 없지않다.보스턴미술관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이 불상은 금강산 유점사에 있던 53불(佛)중 하나다.신라시대 이후 유점사는53불을 본전인 능인보전에 모셔왔다.이후 몇차례 개금(改金)불사를 거쳐 조선조 후기까지 온전히 보존돼 왔다.그러나 1907년 의병전쟁이 벌어지면서 유점사 자체가 전란에 휩싸였고 53불도 수난을 겪기 시작했다.1912년 일본인에 의해 유점사의 53불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으나 이미 3불이 없어진 50불만 남아 있었다.당시의 자료가 『조선고적도보』에 실려 지금껏 전해온다. 보스턴미술관의 주장대로라면 이 불상은 1907년 의병전쟁이후 유점사에서 흘러나온 셈이다.이를 소장했던 사람은 1906년부터 1913년 타계하기까지 보스턴미술관의 큐레이터를 지낸 오카쿠라다.
그는 재임중 이 불상을 팔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팔지 않았다.
그의 타계후 평소 오카쿠라와 가깝던 에드워드 헬름스(보스턴미술관 회장역임)가 부인으로부터 구입해 1932년 미술관에 기증했다.시기적으로 약간 간격이 있지만 오카쿠라가 보스 턴에 있을 때 이 불상을 구입했을 수도 있고,아니면 이에 앞서 한국.중국등을 답사할 때 습득하지 않았는가 싶다.
보스턴미술관측의 이런 주장에 대해 황수영박사는 『한국 불상의연구』에서 53불중 하나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고,강우방 학예연구실장(국립중앙박물관)도 역시 같은 견해였다.보존상태나 형식으로 보아 개인이나 사찰에서 전세품(傳世品)으로 유전돼오다 일본인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보았다.
약사여래는 중생의 질병과 고난을 벗겨주겠다고 서원한 부처의 한분이다.대개 그의 형상은 왼손에 약병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이른바 시무외인(施無畏印:다섯손가락을 위로 뻗치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여 어깨높이까지 올린 형태)을 하고 있다.
보스턴미술관의 약사여래상은 그 전형을 보여준다.시기적으로 이불상의 제작연대는 통일신라 8세기 중엽으로 볼 수 있다.
이 불상은 삼국시대의 불상과는 달리 좌대와 불상이 비례면에서균형을 이루고 있다.좌대는 8각의 하대와 복련(覆蓮)의 중대,앙련(仰蓮)의 상대로 구분했다.하대에는 안상(眼象)의 무늬를 새겨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다.
또 이 불상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두 양식을 절충하고 있어 양식사적으로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삼국시대 불상에서볼 수 있는 미소가 사라진 대신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머리부분은 나발(螺髮)대신 소발(素髮)을 하고 있고 가사 역시 삼국시대의 주류인 통견의(通肩衣:양쪽 어깨에 가사를 걸침)에다 좌우대칭의 옷주름을 보여준다.아쉬운 점은 본래 광배가 있었지만 오늘날 그것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삼국시대 미륵보살반가상에서 볼 수 있는 미소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얼굴 가득히 잔잔한 미소가 어려있다.또 약사여래 특유의 인자한 눈빛과 살포시 다문 입술은 구도자의 마음을 현세는 물론저승에서도 열어놓게 만든다.종교와 예술이 이토록 가슴저리게 만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강우방 학예연구실장은 『국내외를 통틀어 이 만한 작품을 보기어렵다』며 『통일신라의 불상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고 평했다.
▧ 다음회는 김두량의『개그림』입니다.
보스턴:글=崔濚周특파원 사진=金周晩특파원 자문위원=鄭良謨 국립중앙박물관장 安輝濬 서울대박물관장 洪潤植 동국대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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