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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아홉살 인생'서 열연한 아역 트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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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 니 억수로 무겁데이." "뭐라꼬?"'아홉살 인생'의 주인공 김석.김명재.나아현(앞쪽부터)은 영화를 찍고 나서도 여전히 사이 좋고 활기 차다. 스튜디오를 금세 놀이터를 만들어 버렸다. [권혁재 기자]

"이제 니가 싫어졌어." "니는 그런 말 그렇게 쉽게 하나. 나는 언제 니를 좋아했는 줄 아나." "백여민, 안 들은 걸로 할게." "고마, 들은 걸로 해라."

어른들의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영화 '아홉살 인생' 속 대사다. 통념과는 달리 아홉살이면 인생을 알 만한 나이일 지 모른다. 인생의 쓴 맛.단맛까지도 다 알아버린 나이 말이다. 조그맣고 가녀린 마음에도 사랑이 있고, 아픔이 있다.

위기철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아홉살 인생'은 1970년대 경상도의 한 산동네(감독은 부산을 염두에 뒀다고 하나 너무 개발이 돼서 여수와 서울 홍제동에서 주로 촬영했다)가 배경이다. 아이들은 새까만 맨발을 씻지도 않고 얼굴도 얼룩덜룩이다. 그러나 웃음만큼은 해맑다. 잉크 공장에서 다쳐 한쪽 눈이 안보이는 어머니와 얼음 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를 둔 여민(김석), 누나와 단 둘이 사는 기종(김명재), 여민을 좋아하지만 자기를 친구처럼만 대해주는 것이 불만인 금복(나아현)이 주인공이다. 여기에 서울에서 전학와 여민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우림(이세영)과 대자로 아이들의 조그만 머리통을 사정없이 때리는 선생님이 등장한다.

이들이 엮어가는 이야기는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70년대에 대한 향수를 건드린다. 골목길 구슬치기, 아이스케키 장사, 찌그러진 냄비를 뒤집어 쓰고 하는 전쟁놀이, 이것저것 다 파는 구판장, 똥지게꾼 아저씨가 푼 똥지게 숫자를 세는 모습… . 그러나 왁자지껄한 동네 꼬마 녀석들의 모습처럼 아홉살 아이들이 빚어낸 향수는 '말죽거리…'보다 훨씬 생기있고 아름답다. 정작 이런 연기를 해낸 기종역의 명재(11)는 "제가요, 대사 중에 '울 엄마가 문희보다 이쁘다'고 하는데 문희가 누굽니꺼"라고 되묻는다.

영화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선생 김봉두'와도 비교될 만하다. 강원도 아이들의 풋풋한 순박함이 돋보였던 '선생 김봉두'처럼 경상도 아이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은 같지만, '아홉살 인생'에서는 어른은 주변으로 밀려나고 아이들에게 카메라가 맞춰져 있다.

'킬리만자로''넘버3'에 출연했던 연기 경력 8년차인 김석(13)과 드라마 '대장금'에서 금영의 아역 연기를 해낸 10년차 이세영을 제외하고 대구.울산.부산 등지에서 오디션으로 캐스팅된 아역 배우들은 연기란 걸 처음 해봤다. 아현(13)이는 "저는요, 부산 광안리에 살아서 사투리는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우림이가 자기 옷이 다 미제라고 자랑할 때 '이 뻥쟁이 가시내야'하면서 싸우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더라고요"라며 경상도 억양으로 또박똑박 말했다.

그러나 '초짜'들이었던 만큼 통제 불능이었다. 하지만 윤인호 감독은 아이들에게 "연습하지 말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어린이다움, 자연스러움을 최대한 뽑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롱다리'에 멋쟁이인 아현이는 말 그대로 '촌뜨기 가시내' 금복이가 됐고, 귀염둥이 막내아들 명재는 '코 찔찔이' 기종이가 됐다.

여민이가 엄마의 백태 낀 눈을 가릴 요량으로 선글라스를 사려고 시키지도 않은 아이스케키 장사를 했다며 어머니에게 종아리를 끊임없이 맞는 장면은 어린아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을 장면. 그런데 김석은 "연기에 몰두하다 보면 슬픈 감정이 저절로 나와요. 엄마 역의 정선경 누나랑 부둥켜 안고 막 울었어요. 안성기.한석규 아저씨같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연기하는 건 정말 재미있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어른이 돼서도 연기자가 될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강원도 대표 선수로 초.중.고 전국대회에서 2등을 차지할 만큼 소질을 발휘하는 승마 때문이다.

그나저나 모든 세상 고민을 짊어졌던 영화 속 여민처럼 김석도 걱정이 많다. "'아홉살 인생'이 대박일지 아닐지도 걱정이고요, 곧 있을 승마시합도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역시 아이들은 어른들 생각보다는 훌쩍 커 있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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