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군부·외무성 ‘릴레이 트집’ 총선 앞두고 남남갈등 부추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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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이례적으로 남한의 특정 군 인사를 겨냥해 사과를 요구하는 전화통지문을 보낸 데는 여러 가지 뜻이 숨어 있다. 북한은 남북 군 당국 간 공식 창구인 장성급 회담 북측 단장 명의로 국방부에 전통문을 보내 우리 측의 분명한 입장을 요구했다. 남한의 태도를 확인, 그에 따른 북측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로 남한을 공격할 경우에 대비한 우리 군의 대비 방침을 밝힌 김태영 합참의장의 26일 국회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은 보수 성향의 이명박 정부에 대한 장고가 끝났다는 의미로 우리 당국은 일단 분석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대선 이후 이명박 정부에 대해 침묵을 지켜왔다. 그러나 최근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북핵 미해결 시 개성공단 확대 곤란’, 유명환 외교부 장관의 ‘북핵 신고 8월까지 데드라인’ 등의 언급에 대해 본격적인 비난을 시작했다. 북한은 김 의장의 ‘핵기지 타격론’을 놓고선 “선제타격론”이라고 주장하며 ‘남북 대화 중단’의 카드로 압박 강도를 더 높이고 있다.

이 같은 북한의 전선 확대는 당장 4월 9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남남 갈등’을 부추기려는 의도로 보인다. 통일연구원 정영태 박사는 “남북 간 긴장 조성의 책임을 새 정부와 미국에 떠넘겨 남한 내 진보세력의 결집을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 정부와 군의 기획적인 행동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의장이 북한의 핵 공격에 대한 우리 군의 일반적인 군사 대책을 밝힌 것을 두고 북한이 그들의 핵무기 위협보다는 남한의 선제공격 가능성을 더 부각시키려고 한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북한 군부와 외무성이 동시 다발적으로 나선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북한군이 총선을 앞둔 미묘한 시기에 훈련이라는 명분으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장성급 회담 북한군 단장 명의로 전통문을 발송한 것은 국방위원회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북한의 국방위원회는 북한 최고 권력기구로 위원장이 김정일이다.

이 같은 구도에 따라 남북 간 대화 단절과 긴장 상황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북한 군부가 군사분계선 통과 허가권을 갖고 있어 전통문에 예고한 대로 우리 당국자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전면 차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즉각 대응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국방부 당국자는 30일 “북한이 (행동) 수위를 계속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북의 행보에 즉각 반응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그런 차원에서 원칙적으로 대응하되 북한의 행동에 말리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자는 게 (정부의) 대체적인 분위기”라며 “청와대를 중심으로 관련 부처 간의 생각을 모으고 (대응책을) 조율해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김태영 합참의장=“제일 중요한 것은 적이 핵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빨리 확인해 적이 사용하기 전에 타격하는 것이고, 저희 쪽에 사용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미사일에 대한 방어대책을 강구하는 것이고, 이런 것을 통해 핵이 우리 쪽에서 작동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3월 26일 국회 인사청문회 답변을 통해)

◇북한 전화통지문=“우리 군대는 당면하여 (남한) 군부 인물들을 포함한 남측 당국자들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전면 차단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 (3월 29일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북측 대표단장 명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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