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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한나라당 대변인 “검사 지망생인 날 보고 피의자들 피식 웃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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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호 06면

신동연 기자

바야흐로 여성파워 시대다. 커트라인이 가장 높다는 서울대 의대는 여학생이 이미 절반을 넘었다. 사법연수원생도 40%가 여자다. 하지만 시계추를 불과 10년 정도만 돌려놓아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이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1994년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 들어갔을 때 그는 사법시험 출신 1호 여성 로펌 변호사였다. 이젠 대세가 된 정당 여성 대변인도 그가 2002년 한나라당 선대위 공동 대변인을 맡은 것이 1호였다. 한국씨티은행 부행장으로 있다가 6년 만에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온 조 대변인은 화려한 경력만큼이나 화술과 매너가 세련된 ‘알파걸’의 모습이었다.

두 여성 대변인의 삶 그리고 정치

-정치권을 완전히 떠난 게 아니었나요.

“2002년 때는 사실 정치를 하고 싶었다기보다 선거 태스크포스 팀에 합류한다는 생각으로 들어왔어요. 100일 정도 일을 하면서 ‘아직 어리다.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다시 내 전문 분야에서 더 일하고 싶어 김앤장으로 돌아갔죠. 그때 정치권에서 인연을 맺은 여러 분이 고맙게도 계속 연락을 주셨고, 결국 다시 오게 됐네요.”

-2002년 대선 때 대변인 경험이 도움이 되던가요.

“그때는 정말 실망이 컸어요.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실패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때 수백 명의 기자, 당 사람을 상대하면서 모르는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솔직한 것밖에는 정도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던 시기였죠.”

-미모를 갖춘 여성 대변인이 각 당의 대세인 것 같습니다.

“여성이 장점이 많아요.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우선 관심을 끌어야 하는데 여성이 아직 소수니까 그런 점에서 유리하죠.”

-전임자인 나경원 의원하고 이미지가 많이 비슷해요.

“그런가요. 아직 여성 정치인이 많지 않아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했던 일도 다르고 많이 달라요. 18대 때 여성 정치인이 많아지면 이런저런 다른 부분이 보이지 않을까요.”

-한나라당이 왜 이번에 유난히 공천 진통을 심하게 겪고 있나요.

“공천 탈락이라는 게 대학입시 준비하는 사람에게 시험 자격을 박탈하는 것과 같다고 봐요. 정말 잘하려고 개혁 공천한 것인데 그 와중에 잘못된 것도 있고, 안타까운 부분도 있었어요. 상처가 있었지만 빨리 아물게 하고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어떻게 로펌에 들어가게 됐나요.

“그때는 여성 사시 합격자 수가 적기도 했지만 로펌은 너무 힘들다고 생각해 전부 법원에 갔어요. 저도 처음엔 검사를 하려고 했어요.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검사 시보를 했는데 피의자들이 저를 보고는 피식 웃더군요. 차근차근 지능적인 수사를 해 혐의를 밝혀내는 일이 매력적이더군요.”

-그런데 왜 안 했죠.

“실제로 제가 가진 모습보다 더 터프하고 거칠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그때 유산도 하고 해서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학교 다닐 때 운동권하곤 거리가 있었을 거 같아요.

“대학 1학년 때 MT나 학회에 가 운동권 선배들의 얘기를 많이 들어봤지만 너무 과격하고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보수적인 학생은 입도 뻥끗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자유로운 토론과 반론이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가 안 맞았죠.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남편(5세 위인 남편 박성엽 변호사는 김앤장에서 공정거래 업무를 담당한다)이 사법시험을 권해 4학년 때 시험 준비를 시작했어요.”

-오페라 매니어라는데 오페라의 매력은 뭔가요.

“미국 유학 시절 맨해튼에 살았는데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겠나 싶어 틈나는 대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 갔어요. 오페라를 한 20편쯤 보니 2차원 평면이던 오페라가 어느 날 3차원의 입체예술로 확 다가오더군요. 오페라 공연을 하러 한국에 오는 예술인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초청해 저녁을 대접하는 일도 보람이 있죠. 한국의 정명훈씨 정도 되는 러시아의 게르게예프나 미국의 줄리어스 루델 같은 지휘자도 초청했어요.”

-비례대표 13번을 받았는데 국회의원이 되면 어떤 일을 해보고 싶나요.

“13번은 다 싫어하는 번호죠(웃음). 은행에 있으면서 한국 금융산업에 대한 위기감을 많이 느꼈어요. 중국이 법 제도와 규제를 한꺼번에 개혁해 치고 나오면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중국에 금방 편입될 수도 있겠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더군요. 씨티라는 글로벌 조직에 있어 보니 홍콩·싱가포르·영국에서는 되는 게 우리나라에는 안 되는 게 너무 많아요. 이유를 들여다보면 굳이 법을 바꿀 필요도 없이 그냥 실무 관행만 바꾸면 되는 게 태반이에요. 정말이지 금융시장을 빨리 확 뜯어고치는 게 너무너무 시급해요. 그리고 정치권이 쓰는 언어의 인플레가 너무 심해요. 한 전직 외국 여성 총리가 연설하는 걸 들어보니 정말 격조 있더군요.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정치인의 연설문을 외우는 시대를 만들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니 조 대변인은 자신의 저서 『미술관에서 오페라를 만나다』를 기자에게 선물했다.

그가 월간 객석에 2년간 연재했던 오페라 칼럼을 엮은 것이다. 외국의 새로운 도시에 갈 때면 미술관부터 달려간다는 그의 매니어적 기질이 듬뿍 묻어 있다. 서문에는 소동파의 적벽부가 인용돼 있다. 이 세상 모든 물건이 다 제각각 소유가 있지만 강 위의 청풍과 산간의 명월은 누구나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대변인은 누구나 함께 즐기는 예술처럼 ‘달도 삼키고 바람도 보듬는 마음의 부자로 살고 싶다’고 적었다. 하지만 남이 얻는 만큼 내가 잃어야 하는 ‘제로섬’의 정치 게임을 시작한 그가 과연 ‘마음의 부자’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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