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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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떠난 자와 남은 자(24) 『아흔아홉까지 살아도 한 살 더 살기를 바라는 게 사람 마음이다.그렇지만 어디 그뿐이냐? 악으로 모은 살림은 악으로 당하게 되어 있다.세상 바라보자면야 왜 너같은 생각이 안 들겠냐? 나도 그건 마찬가지다 .안벽치고 바깥벽 치고,한 손 가지고 두 짓하는 놈들 벼락도 안 맞고 잘만 살고,안되는 놈은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게 또 세상 아니더냐.』 기평이 몸을 일으켰다.그는 장규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길이 아니라서 안 가는 게 아니다.길이 없어서 못 가는 거아니냐.』 장규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이건 사는 게 아니다.우린 지금 송장 빼놓고 장사치르는 꼴이나 하고 있는 거다.』 김씨가 중얼거렸다.
『자넨 그 성질 좀 죽일 때도 됐는데 그러네.아니,쉬 더운 구들 쉬 식는다는 말도 몰라?』 다음날 저녁무렵이었다.기평은 바다를 내다보며 서 있었다.요즘 날씨 때문인가.며칠 째 저녁무렵이면 바다는 핏빛으로 물들곤 했다.바라보기만 해도 턱없이 가슴이 저려오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는 어금니를 힘주어 물었다.지난해 흘린 눈 물 올해 떨어진다는 말도 있다.태수야.너 혼자 힘들다 생각하지 말고 견디거라.그래도 너 있어서 이런 저런 일들 참 많았구나.
화순이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자신은태수에게 말하지 않았던가.때는 이때다 더 두고 볼 거 없이,들고 일어나자.
그때 태수가 뭐라고 했던가.아니다.동에서 와와 소리치고 때리기는 서쪽을 때려야 한다.튈 사람 있으면 튀게 해야 한다.
그래서 무엇이 왔나.파업을 했고,시체를 내놓으라면서 사무소로몰려가기도 했다.그렇게 공들여서 도망을 치게 했는데도 어느틈에첩자가 있어서 다들 잡히고,그나마도 죽은 몸이 되어 돌아왔다.
해가 떨어지면서 바다 위를 덮고 있는 구름 사이로 빛의 기둥처럼 붉게 뻗쳐나오던 햇살도 서서히 흐려지고 있었다.뜨는 해는지게 되어 있지.그리고 아침이면 또 어김없이 해는 뜨는 거… 기평은 숙였던 고개를 들며 섬을 돌아다보았다.드 높이 치솟아 있는 건물들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어금니를 물면서.
뜨자,폭약이라도 훔쳐서 여길 떠야 한다.그리고 어디든 태수 있는 데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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