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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이삼촌의꽃따라기] 풍도는 ‘한국의 갈라파고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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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제도는 남미대륙에서 1000km 정도 떨어져 있다. 외부의 영향 없이 수백만 년 동안 독자적으로 진화한 그곳의 동식물들은 다윈 진화론의 모태가 됐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섬들이 있다. 동쪽에 울릉도가 있고 남쪽에 제주도가 있다. 서쪽은 어디일까? 나는 풍도(豊島)를 꼽는다. 경기도 안산시 대부동에 속하는 풍도는 지도상에서는 충남 당진군에 가깝다. 아주 작은 섬이지만 다른 데 없는 변이종 식물이 많아 ‘갈라파고스’에 견준 것이다.

1. 풍도대극 여기에만 있어 ‘풍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육지의 붉은대극과 흡사하지만 유전적으로는 매우 이질적인 대립인자를 갖고 있다. 푸른색의 새순, 털이 달린 씨방이 특색이다. 붉은색 새순, 털이 없는 씨방의 것도 같은 장소에서 볼 수 있어 붉은대극에서 완전히 분화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봄이면 풍도대극이 거의 섬 전체를 뒤덮는다. 섬을 대표하는 식물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2. 갈기복수초 풍도는 ‘복수초밭’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중 일부는 꽃잎 끝이 사자 갈기처럼 갈라진다. 이 종류는 이영노 박사의 도감에만 등장하며 아직 국가표준식물 목록에는 오르지 않았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복수초와 갈기복수초의 중간 격인, 즉 꽃잎이 갈라질까 말까 한 것들도 보인다. 역시 아직 확실한 종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다.

3. 꼬리현호색 이곳의 현호색은 유난히 잎과 줄기가 크다. 그래도 육지의 것과 얼마나 다를까 싶어 지나치기 쉽지만 꽃잎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이곳 현호색의 바깥쪽 꽃잎 가장자리엔 일반 현호색과 달리 자잘한 톱니가 있고, 끝부분의 V자로 파진 가운데에 꼬리 같은 게 비쭉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육지의 현호색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다. 아랫입술꽃잎뿐 아니라 윗입술꽃잎도 같은 모습을 보인다. 꼬리현호색은 내가 임시로 붙인 이름이다.

4. 녹노루귀 풍도에는 노루귀도 지천이다. 이 중 잎에 선명한 무늬가 들어간 종류가 있는데 새끼노루귀와의 중간종으로 보인다. 그뿐 아니다. 노루귀는 대개 꽃받침잎의 밑부분에 달린 포가 자갈색을 띤다. 그런데 흰색으로 피는 것 중에서 포가 자갈색이 아니라 녹색인 것도 있다. 아주 적은 수지만 일반적인 노루귀와는 분명히 대조적이고 또 예쁜 모습이다. 녹노루귀라는 이름도 내가 붙여봤다.

5. 변산바람꽃 이 섬엔 변산바람꽃 군락을 보러 오는 야생화 동호인이 많다. 이 꽃은 최근에 자생지가 많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규모가 여기만 한 곳은 드물다. 워낙 개체가 많다 보니 머리가 둘 달린 녀석도 보이고, 꽃받침이 특이한 녀석들도 곧잘 눈에 띈다. 꿩의바람꽃과 중의무릇 · 복수초 · 노루귀 등이 한데 어울려 무더기로 핀다. 여기서 처음 변산바람꽃 군락지를 만난 이라면 ‘꽃멀미’라는 말을 실감할 것이다.

글·사진 이동혁 (http://blog.naver.com/freebo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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