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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치킨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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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결승 3번기 2국>

○·박영훈 9단( 1패) ●·이세돌 9단( 1승)

제8보(89~97)=흑▲로 지키다가 백△의 요소를 내줬다. 이세돌 9단의 화려함과 도전적인 플레이를 생각할 때 흑▲는 마땅히 백△자리로 가야 했지만 심정의 율동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닌가 보다.

89로 차단한 것은 동태를 살핀 수. A의 이득을 확보하면서 백 대마의 삶을 은근히 강요하고 있다. 백이 겁을 먹고 B 정도로 연결한다면 그건 공배를 두는 것이니까. 한데 박영훈 9단의 반응은 천만 뜻밖이다. 도주는커녕 허공으로 힘차게 도약하며 90으로 흑의 진로를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이세돌은 울컥 격정에 사로잡힌다. 그렇지 않아도 흑▲의 소심(?)이 마음에 걸리던 참인데 감히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이세돌의 눈이 빛을 뿜더니 93, 95로 승부의 칼을 뽑아 들었다.(‘참고도’흑1로 중심을 잡으면 온건하다. 백도 2로 지켜 장기전이 된다)

박영훈 쪽도 의외다. 그는 마치 생사에 초탈한 사람처럼 94, 96으로 막아 간다. 초강수에 초강수. 고수들의 바둑에서 좀체 보기 힘든 ‘치킨 게임’이 펼쳐지고 있다. 마주보고 달려오는 두 대의 자동차.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지는 치킨 게임. 그러나 이세돌과 박영훈은 그 누구도 핸들을 꺾지 않는다. 이리하여 97, 99로 백 대마는 절단됐다. 두 집이 없으니 바깥, 흑 대마를 잡지 못하면 그대로 죽음이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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