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627현장에서>강원-말로는 모두 재원조달 名手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중앙부처의 예산담당자들은 앞으로 진땀깨나 흘릴 각오를 단단히해두어야 할 듯 싶다.중앙 정계(政界)의 실력자 청탁 들어주랴,우는 아이 젖주랴 들볶이려면 말이다.
선거판에 난무하는 그 숱한 약속들이 믿지 못할 것이란 거야 진즉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부분인데도 선거때면 어김없이 풍성한 공약이 내걸린다.광역(廣域)이냐 기초단체 선거냐에 따라 크기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한 발 물러서서 보는 입 장에선 본질적으로 똑같은「애드벌룬」이다.선전기간이 끝나면 슬그머니 내려질,그래서 언제 걸렸었던가 싶은 그런 애드벌룬 말이다.
강원도의 여러 선거유세장에서 들어본 가장 흔한 소리는 이른바「무대접」이다.강원도가 푸대접도 아닌 무대접을 받아 왔다는 것에 대해서는 여야(與野)후보들이 다를 바가 없었다.춘천에서 속초로 빠지기가 한결 수월해졌고,영동고속도로 원주 ~강릉 구간과동해안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7번국도의 확장 작업이 한창인 것 정도로는 무대접을 푸대접으로라도 끌어올리기에 역부족이란 얘기다. 누구도 정답을 말할 수 없는 문제중 하나인 개발과 보전의 조화란 문제는 일단 차치하자.강원도민을 위해,또는 강원도의 아름다운 풍광(風光)을 쉽게 만나려는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개발이 더욱 필요하다고 치자.그러나 문제는 결 국 돈이다.강원도의 재정자립도는 30%대에 불과하다.현재의 무대접을 「유지」하기 위해서만도 70%가까운 돈을 중앙정부에서 끌어와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국제공항을 건설하고,항만을 국제규모로 확충하며 고속전철을 놓고 지역 거점도시들을 저마다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등 무대접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이런현실 인식과 중앙 재정을 더 끌어와야 할 필요성 에 대해서는 후보들의 주장이 다르지 않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중앙정부에서 더 많은 돈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힘있는 여당」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것이 여당후보의 논리다.중앙정계.관계(官界)와의 막역한 「끈」을 강조한다.
휘황한 수식어 속에 등장,지원연설에 나선 중앙 정계 의 한 실력자는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팍팍 밀어줄」것을 스스럼없이 다짐한다.
선거때마다 여당에 표를 몰아줬더니 천대받고 괄시받았다는 것,그러니 본때를 보여주어야 우습게 알지 못하리라는 것,그래야 대접도 받고 돈도 나온다는 것이 야당의 논리다.
중앙 재정이 화수분이 아닌 터에야 이를 어떻게 나누느냐는,한쪽의 몫이 커지면 다른 한 쪽의 몫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후보들이라고 이를 모를 리 없다.더욱이 강원도지사 선거의 여당후보는 두 번 의 도백(道伯)과 중앙경제부처의 차관을 지낸 사람이고,야당후보는 예산을 책임지는 경제부총리와 한 때 집권여당의 정책위의장까지 지냈던 더욱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그래도 해법은 중앙과의 「끈」이나,중앙정부에 대한 「본때 보이기」를 내 세우는 인정적(人情的).
감정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부총리로 예산을 「주무르던 시절」에 강원도를 위해 해준 것이뭐냐는 여당후보의 공박이나,「젖도 우는 아이한테 준다」는 야당후보의 반론이나 하등 다를게 없다.그 시절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해 젖을 못줬다는 야당후보가 이제부터는 앞장서 울겠다고 나서고,동향(同鄕)의 부총리에게 읍소(泣訴)해도 「무대접」을 해소못했다는 여당후보는 이제 중앙정계와의 끈으로 이를 해결하겠다는모습은 자못 희화적(戱畵的)이다.예산이란 한 개인이 주무를 수도,울음소리의 크기에 비례해 갈라 주는 것도 아니란 것을 잘 아는 후보들 스스로가 속으로는 겸연쩍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정치적인 거짓말쟁이는 다른 거짓말쟁이들과는 달리 짧은 기억력을 가져야 한다.왜냐하면 그는 상대에 따라 시시때때로 자신의의견을 번복하고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의견을 말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 너선 스위프트가 근 3백년전에 「정치적인 거짓말」이란 소고(小稿)에서 한 얘기는 여전히 유효하다.
금방이라도 쏟아부을듯 했으면서도 비를 뿌리지 않은 한 연설회장이 생각난다.『여러분의 뜨거운 열기로 비가 비껴갔다』는 주최측의 감격어린 말 뒤로,애써 연설회장까지 나왔으면서도 『비가 왔으면 좋았을텐데.처갓집 논이 천수답이거든』하던 한 유권자의 심드렁한 표정이….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