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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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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 중 하나는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시에 대한 독일군의 900일 포위작전이다. 전쟁 초기인 1941년 9월 8일부터 패퇴하던 44년 1월 27일까지 정확히 872일간 봉쇄했다.

그 과정에서 300만 시민 중 80만명이 기아와 질병으로 숨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형도 그 후유증의 희생자다. 푸틴은 전쟁이 끝나고 레닌그라드가 '영웅들의 도시'로 칭송받던 52년에 태어났다.

푸틴의 역할모델은 레닌그라드를 만든 계몽군주 표트르 대제(Pyotr the Great)라고 한다. 대제는 18세기 초 근대국가의 터를 닦은 현군(賢君)이자 절대권력의 차르(Czar.러시아 황제)다. 차르는 젊은 시절 18개월간 네덜란드.영국 등에서 조선소 노동자로 위장취업해 선진기술을 직접 익혔다.

서유럽 기술자와 함께 귀국한 그는 칭기즈칸의 정복 이래 중세의 미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조국을 유럽 국가로 탈바꿈시켰다. 그 과정에서 스웨덴으로부터 빼앗은 땅이 '유럽으로의 창(窓)'이라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제정 러시아 200년의 도읍지다.

비극적인 가족사의 푸틴은 표트르의 영광, 곧 부국강병의 꿈을 품고 자랐다. 냉전과 함께 자란 푸틴으로서 최선의 선택은 KGB(정보부)였다. 당시 KGB는 전체주의 소련을 지탱했던 엘리트 집단이었다.

푸틴은 80년대 후반 동독 드레스덴에서 근무할 당시 서방사회를 간접 체험하면서 조국의 부패.무능을 한탄했다. 서독에서 팝송 테이프를 구해 들었으며, 공산당 지도자 체르넨코가 숨졌다는 소식에 샴페인 축배를 들기도 했다.

현재 러시아의 일반직(비군사.정보) 관료 가운데 25%가 KGB 출신으로 추산된다.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이전엔 3%에 불과했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KGB 출신이 많다. 그 정점에 푸틴이 서 있다. 99년 옐친의 후계로 지명됐을 당시 2%에 불과했던 그의 지지도는 14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80%에 육박하고 있다.

푸틴의 재선은 확실하다. 재선 임기가 끝나는 2008년엔 3선 개헌으로 집권을 연장할 것이란 추측도 이미 만연하다. 그는 스탈린 이후 최고의 철권으로 평가된다. 유럽이 새로운 차르의 등장을 근심스레 지켜보고 있다.

오병상 런던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