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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통합으로 ‘더 완벽한 미국’ 만들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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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38면

버락 오바마 미 상원의원이 18일(현지시간) 필라델피아 헌법기념관에서 인종 문제를 주제로 연설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필라델피아 AP=연합뉴스]

“우리 국민은 보다 완벽한 연방을 건설하기 위해….”

221년 전 미국 민주주의를 출범시킨 말입니다. 전제 정치와 종교적 박해를 피해 바다를 건너온 농부와 학자·정치인은 이곳(필라델피아)에서 이 글귀가 들어간 헌법에 서명했지만 궁극적으로 헌법은 미완의 것이 됐습니다. 헌법은 미국의 원죄인 노예제로
더럽혀졌습니다. 헌법은 모든 시민에게 법 앞의 평등과 자유·정의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양피지 위의 약속은 노예를 속박에서 해방하기에, 인종과 종교 차이를 불문한 모든 시민에게 완전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데 충분치 않았습니다. 따라서 후(後)세대 미국인은 거리에서, 법정에서 우리의 이상과 그 시대 현실의 간격을 좁히려 투쟁했습니다.

최근 인종 갈등의 거품이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언론은 모든 출구조사에서 인종별로 나뉘는 선거 결과를 찾아내려 혈안이 됐습니다. 흑과 백, 흑과 갈색까지 구분하려 했습니다. 나에 대한 지지가 차별 철폐 조치(affirmative action) 덕분이며, 흑백 화합을 싼값에 얻으려는 진보적 백인의 열망 때문이라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반면 제레미아 라이트 목사는 인종 간 골을 더욱 깊이 파고, 우리의 선의를 훼손할 수도 있는 선동적 발언을 했습니다. 이는 분명히 백인과 흑인 모두에게 상처를 주고 분열을 초래하는 발언입니다.

지금은 통합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테러리스트의 위협, 추락하는 경제 등은 흑인의 문제도, 백인의 문제도, 라틴계의 문제도, 아시아계의 문제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 손잡고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입니다.

20년 전 알게 된 라이트 목사는 나에게 기독교 신앙을 소개했고, 사랑을 가르쳐준 분입니다. 가족 같은 분입니다. 내가 흑인 공동체와, 나의 백인 할머니와 의절할 수 없듯 그와 의절할 수 없습니다. 나의 외할머니도 (흑인인) 내 앞에서 ‘길거리에서 흑인 남성을 지나칠 때 무섭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내 일부이고, 내가 사랑하는 조국, 미국의 일부입니다.

지난 수주간 우리 사회의 복잡한 인종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정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회피하면 우리는 보건의료·교육·일자리를 찾는 문제의 해법도 찾을 수 없습니다. 윌리엄 폴크너는 “과거는 죽어 매장되지 않는다. 사실 과거는 과거가 아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흑백 사회의 불균형은 노예제와 흑인 차별 정책의 끔찍한 유산으로부터 이어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흑백 분리 학교들이 있었고, 열악한 조건의 학교들이 지금도 있습니다. ‘브라운 판결(1954년 공립학교의 흑백 분리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 지 50년이 지났지만 이를 바로잡지 못했습니다. 흑인은 땅을 갖지도, 은행 대출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경찰관도, 소방관도 되지 못했습니다. 후손에게 물려줄 재산을 모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역사가 백인과 흑인의 빈부 차, 도시와 농촌의 흑인 슬럼가를 만든 것입니다. 패배의 유산을 이어받은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길거리에서 헤매거나 감옥에서 쇠약해져 가고 있습니다.

흑인의 분노는 백인 친구 앞에서 공개적으로 표현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발소나 식탁에 둘러앉을 때는 다릅니다. 분노는 엄연한 현실이고, 엄청난 것입니다. 분노의 뿌리를 이해하지 않고 비난만 하는 것은 인종 간 오해의 간극을 더욱 넓힐 뿐입니다.

똑같은 분노가 백인 사회에도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백인 노동자나 중산층은 특별히 인종 문제를 느끼지 못합니다. 평생 열심히 일해온 그들은 자신의 연금이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것에 분노합니다. 꿈이 쓸려가 버린다고 느낍니다. 세계화 경쟁이 심한 불황기에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꿈은 나의 희생으로 이뤄진다는 제로섬 게임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르지 않은 조상의 불의(不義) 때문에 흑인에게 좋은 직장과 학교를 다닐 기회를 빼앗겼다며 억울해합니다. 흑인의 분노와 마찬가지로 백인 사회의 감정 역시 회사 같은 곳에선 표출되지 않습니다. 대신 정치적인 지형을 형성합니다. 1980년 ‘레이건 연합(Reagan Coalition·중도층과 보수파의 연합)’의 형성이 한 예입니다. 정치인은 선거를 위해 범죄의 공포를 이용했고, 토크쇼 진행자나 보수 논객은 인종주의를 자극해 자신의 입지를 구축해 왔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여깁니다.

그러나 이 나라는 라이트 목사의 동료 한 명을 최고위직에 도전하도록 한 나라입니다. 미국은 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룩한 업적은 우리에게 희망을, 희망을 향한 담대함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미국을 건설하기 위한 도정에서 백인 사회가 할 일은 흑인 차별의 과거 유산이 있고, 지금 차별적 사건들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과거 세대에 불가능했던 기회의 사다리를 제공하고 흑인·라틴계·백인 어린이에 대한 교육 투자를 해야 합니다. 이는 모든 미국인의 번영에 기여하는 일입니다. 단언컨대 우리는 함께 과거의 인종 문제로 생긴 상처를 치유할 수 있고, 더 완벽한 미국을 건설하기 위해 전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정리=김수정 기자 su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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