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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리더십에 치명상…이란은 ‘어부지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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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호 18면

미국인은 거짓말쟁이(liar)와 패배자(loser)라는 말을 욕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미국 문화는 그만큼 진실과 성공을 숭상하고 거짓과 실패를 멸시한다. 이라크 전쟁은 그런 미국으로 하여금 자신의 거짓과 패배를 자인하게 만들었다.

이라크전의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가

이라크 침공의 명분은 이라크와 알카에다 간의 반미연대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였다. 결과적으로 미 행정부는 국민과 세계를 향해 거짓말을 했다. 이라크 점령 후 샅샅이 뒤졌으나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 지난달 미 국방부는 노획한 60만 건의 문서를 검토한 결과 사담 후세인과 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 간에는 아무런 연대가 없었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군사적으로도 사실상 실패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9일 연설에서 “이라크에서 거두고 있는 우리의 성공은 부인할 수 없다. 세계는 더 좋아졌고 미국은 더 안전해졌다”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17일 바그다드를 방문한 딕 체니 부통령은 ‘경이적인 안전상의 진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을 비웃듯 그날 폭탄 공격으로 60명의 이라크인이 사망했다. 미군은 지금까지 3983명이 전사하고 6만5000명이 부상했다. 지금까지 지출된 전비는 5000억 달러다. 미국의 납세자도 패자다. 그럼에도 이라크가 언제 안정화될지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이라크 전쟁이 미국에 남긴 가장 심각한 폐해 중 하나는 국론 분열이다. 19일 발표된 CBS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의 71%는 전쟁이 잘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렇게 생각한 민주당 지지자는 26%였다. 조속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달리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는 “필요하다면 이라크에서 100년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라크를 둘러싼 미국 내 국론 분열은 다음 정권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부시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쓸지도 모른다. 부시 행정부 내부의 결속과 외곽의 신보수주의자(네오콘) 세력도 약화됐다. 미국 의회와 언론도 행정부의 오판을 용인한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미국의 국제적 위상도 실추됐다. 예전에는 미국 관리들이 다른 나라에 고문이나 인권 유린을 하지 말라고 훈수를 들었다. 요즘 그러면 “미국 당신네나 잘하시오” 하는 시큰둥한 반응이 나온다.

미국이 최대의 패자라면 최대의 승자는 이란이다. 최대의 정적인 사담 후세인을 미국이 제거해줬다. 이란의 정규·비정규·예비 병력을 모두 합치면 1200만 명이나 된다. 세계 최대다. 군사대국인 이란은 중동의 패자 자리를 노리게 됐다. 이라크 주둔 미군은 이란의 ‘인질’이 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은 두 개의 전쟁에서 승리를 낙관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만큼 이란도 여유가 생겼다. 같은 이유로 핵개발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지루한 줄다리기를 할 수 있었던 북한도 이라크전의 승자다.

이라크는 지금까지는 패자다. 인구의 14%가 넘는 400여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게다가 나라가 시아파·수니파·쿠르드족이 각각 지배하는 남부·중부·북부로 분열됐다.
중동 지역도 불안정하게 됐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등 이슬람주의 단체들이 세력을 키웠다.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2006년 9월 한 기고문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빈라덴에게 선사했다”고 했다.

이라크 침공과 이라크 정세 불안은 국제 석유가 상승을 부채질했다. 세계 5대 석유회사와 카타르·아랍에미리트·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도 승자다. 넘치는 외화 덕에 산유국 각지에서 건축 붐이 일어났다. 석유 판매 수입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해 70%가 넘는 지지를 얻은 블라디미르 푸틴 전 대통령과 그 후계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도 이라크전의 승자다.

이라크전과 같은 상황을 예견하거나 소수 의견을 내놓은 사람들도 승자가 됐다. 학계에서는 대표적인 경우가 새뮤얼 헌팅턴 교수다. 그는 문명충돌론을 통해 이슬람과 서구의 충돌을 예견했다. 오바마도 승자다. 그가 민주당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라크전을 처음부터 반대했기 때문이다.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승패는 뒤바뀔 수 있다. 승리와 패배 속에는 또 다른 패배와 승리의 싹이 튼다. 이라크전으로 중국은 ‘미국의 평화(Pax Americana)’를 대체할 수 있는 ‘중국의 평화(Pax Sinica)’를 과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도 중국을 이라크전의 승자로 꼽았다.

최근 중국은 티베트 사태로 시험대에 올랐다. 헤게모니를 방해할 수 있는 이질적인 세력은 국내에 있을 수도, 국외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세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산하는 구조는 닮은꼴이다. 또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시장사회주의도 궁극적으로는 극단적 이슬람주의와 충돌할 수 있다.

이라크 전쟁의 최대 수혜자인 이란도 이라크에서 독립을 꿈꾸는 쿠르드족이 이란의 쿠르드족을 부추긴다면 패자로 전락할 수 있다. 부시 대통령도 패자에서 승자로 위상이 바뀔 수 있다. 그는 임기 중에는 인기가 없었으나 지금은 높이 평가받는 해리 트루먼 대통령을 예로 들며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일방주의는 흠집은 생겼지만 다자주의로 대체되지는 않았다. 그만큼 미국에도 궁극적 승자가 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이라크의 승패는 어떻게 될 것인가. 사담 후세인의 24년 철권통치가 붕괴됐고, 민주적인 헌법에 의한 선거와 여권 신장이 있었다. 지난주에는 10월 지방선거 실시가 합의됐다. 그런 의미에서 이라크는 이미 승자다. 올해 이라크의 석유 판매 수입은 6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를 국내 안정과 인프라 구축에 활용한다면 이라크에도 서광이 비칠 것이다. 1950년대 영국의 더 타임스 기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평했다고 한다. 그 기자의 전망이 틀렸듯 이라크에서도 민주주의의 꽃이 활짝 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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