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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원자재쇼크] 일본, 밖에선 자원 개발 … 안에선 자원 절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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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 미쓰이물산·미쓰비시상사가 원유를 끌어올리는 '사할린 2'광구. 여기서 연간 750만 배럴의 원유를 일본에 공급한다. [사할린에너지사 제공]

‘천연자원이 없으면 지혜로 승부하라’. 일본 정부와 기업이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내건 슬로건이었다.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해외 자원 확보에 나섰고, 일본 내에서는 각종 자원 절약 프로젝트로 원자재난에 대비해 왔다. 덕분에 근래 세계적인 원자재 파동의 회오리가 일본에선 ‘미풍(微風)’에 그치는 듯하다. 우리처럼 소비자물가가 요동치는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다.

◇‘주식회사 일본’이 뛴다=지난해 4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의 중동 방문단엔 미타라이 후지오(御手洗富士夫) 게이단렌(經團連) 회장을 비롯해 재계 인사 180명이 수행했다. 이에 앞서 3월 도쿄 기오이초(紀尾井町)에 있는 도요타자동차 영빈관엔 재계의 거물들이 모였다. 이 자리의 좌장인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상담역은 “석유와 희귀금속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조짐이 있어 공동 대처방안을 마련하려고 모였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당시 아베 총리의 중동 방문과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경제산업상의 중앙아시아·아프리카 방문에 기업인들이 대거 참여해 자원 확보의 의지를 보이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날 회의 결과 대규모 기업수행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일체로 움직이는 ‘주식회사 일본’의 저력은 자원 확보와 원자재 파동 대처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일본도 과거 두 차례의 오일쇼크 때 원자재 가격이 오른 만큼 소비자 제품 가격을 올려 소비자에게 부담을 떠넘겼다. 그러나 이후 그 충격을 산업에서 흡수할 수 있도록 체질을 바꿨다.

핵심은 다변화와 적극적인 자원 개발. 1996년엔 당시 통산성(현 경제산업성)이 주주로 직접 참여해 이토추(伊藤忠)·마루베니(丸紅)상사와 함께 ‘사할린 1’ 프로젝트의 권리를 30% 따냈다. 2006년 10월부터 이곳에서 생산되는 원유가 일본에 공급되고 있다. 미쓰이(三井)물산·미쓰비시(三菱)상사는 ‘사할린 2’ 프로젝트에 22.5%를 투자했다. 여기선 연간 약 750만 배럴의 원유를 일본에 보내준다. 미쓰비시상사는 아프리카에 뛰어들어 98년 모잠비크에서 알루미늄 광산을, 2002년 남아공에서 스테인리스강의 주원료인 페로크롬 광산을 확보했다. 여기서 채굴한 자원들은 저렴한 값에 일본 기업들에 건네진다.

◇제조업계도 대응책 마련=제조업체들도 해외 자원 현장에 뛰어들었다. 스미토모광산은 3년 전 “중국의 올림픽 특수와 경제성장으로 스테인리스의 원료인 니켈 가격이 급등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해의 회사 총설비 투자액 1400억 엔의 43%인 600억 엔을 세계 각국에서 니켈 생산권을 사는 데 쏟아부었다.

기업들도 ‘에너지 절약형’으로 변신했다. 후쿠이(福井)현의 섬유회사 세이렌은 지난해 8월부터 공장에서 염색이나 건조에 쓰는 보일러 연료를 중유에서 도시가스로 바꿨다. 1억3000만 엔을 들였지만 올해만 연간 7000만 엔의 연료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석유화학업체인 미쓰비시(三菱)화학은 오카야마(岡山)현의 콤비나트 설비를 개량했다. 원래 연료로 쓰던 나프타 외에도 등유·경유를 혼합할 수 있게 해 이달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가격이 급등하는 나프타의 양을 최대 20%가량 줄이게 된다. 고게 에쓰지로(高下悅仁郞) 상무는 “한국과 대만이 대형 석유화학 공장을 속속 증설하는 것을 보면서 이대로 가면 나프타 가격이 폭등할 것이란 생각에서 85억 엔을 들여 설비를 바꿨다”고 말했다.

◇장·단기 구상 골고루 마련=20일 낮 도쿄 긴자(銀座)의 한 편의점. 계산대 옆에 있는 ‘휴대전화 리사이클 회수 박스’에는 간간이 소비자들이 폐 휴대전화를 넣고 갔다. 회수 박스 위에는 휴대전화가 어떻게 재활용되고, 전화기에 얼마나 많은 자원이 함유돼 있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소개한 개념도가 있다. 최근 경제산업성이 ‘자원 유효이용 촉진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안 쓰는 휴대전화의 회수를 촉진하도록 하면서 생긴 박스다. 가까운 곳부터 자원을 얻기 위해 소비자·기업·정부가 한덩어리가 되는 정책이다.

그런가 하면 10년, 20년 앞을 내다보는 계획도 서 있다. 미쓰비시종합연구소는 최근 ‘아폴로 & 포세이돈 구상 2025년’ 보고서를 발표했다. 2025년에는 일본이 대체에너지로 각광받는 바이오 에탄올이나 우라늄· 희소금속을 대량 생산하는 ‘자원 대국’이 된다는 것이다. 구상은 매우 구체적이다. 에탄올 성분이 있는 해조(海藻) ‘모자반(마미조)’을 동해에서 연간 6500만t 양식해 바이오 에탄올을 얻고, 동시에 바닷물에 용해된 우라늄이나 희소금속 성분을 해조에 농축해 거둬들이는 방식도 포함됐다.

지난해에는 산업계와 학계·정부가 공동으로 ‘희소금속 대체 재료 개발 합동 전략회의’를 설치했다. 거의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인듐·텅스텐 등 31개 희소금속을 대상으로 고효율 기술과 대체 재료를 개발하는 12개 프로젝트를 5년 동안 계속한다. 도쿄대·원자력연구개발기구·신일본제철·캐논 등의 고급 두뇌들이 다 모였다.

◆특별취재팀=양선희·장정훈·이철재·손해용·한애란 기자 (이상 경제부문),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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