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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학칼럼

‘귀걸이’형 미래 컴퓨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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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초의 컴퓨터 ENIAC이 탄생한 지 62년이 흘렀다. 탄도 계산을 위해 개발된 이 기계는 진공관이 1만7467개가 사용되고 무게가 30t이나 되었다. 높이 2.6m, 폭 0.9m의 장치들이 26m나 길게 늘어서 있었다. 실로 거대한 장치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PC만도 못한 성능이었다. 그런데 다시 62년이 지난 2070년의 사람은 오늘날의 컴퓨터를 보면 뭐라고 할까. 이렇게 거추장스러운 것을 사용하고 있었느냐고 하지 않을까. 현재 초등학생이 칠십 노인이 돼 사용하고 있을 컴퓨터는 어떠한 모습일까. 곧바로 상상이 되질 않는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다. 현대 컴퓨터에 대한 불만에서 찾아보자.

오늘날 컴퓨터의 능력은 놀랍다. 그러나 무겁고 부피가 크고 전깃줄도 달고 다녀야 한다. 입력하기 위해 키보드 치는 일도 귀찮다. 결과를 크게 보여주면서도 출력장치는 작아져야겠다.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통합돼 콩알만 하면 좋겠다. 그렇다면 이런 컴퓨터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그 크기와 전기 사용의 주된 원인은 입출력 장치다. 몸체 부분은 반도체 기술로 계속 압축이 가능하지만, 입출력 장치는 인간 상호작용이 필요해 압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입력장치인 키보드 없이 생각만 해도 자동으로 입력됐으면 좋겠다. 컴퓨터가 보여주는 것을 그냥 사람이 인식하면 좋겠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회로와 인간의 신경이 연결돼야 한다. 즉 ‘뇌신경 통신’이 필요하다.

머릿속 생각을 입이나 손으로 표현하지 않고 직접 뇌신경을 통해 컴퓨터에 전달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몇 가지의 머릿속 신호가 컴퓨터에 전달되는 수준까지 왔다. 즉 생각만으로 컴퓨터에 입력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인공눈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망막이 손상돼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몇 개의 글자를 구별하는 수준까지 왔다. 인공망막 칩에서 빛을 받아 시각신경에 연결해 준다. 인공귀는 더욱 발전해 고막이 손상된 사람이 인공와우의 도움으로 소리를 듣고 있다. 마이크가 소리를 인식한 후 이를 청각신경에 전달해줘 가능하다.

이처럼 생각만으로 입력하는 기술은 키보드를, 인공눈·인공귀는 출력장치가 돼 스크린과 스피커를 각각 없애줄 것이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입출력 장치가 없어졌으니 전깃줄도 없어진다. 한 달에 한 번 충전해주면 된다. 반도체 기술로 몸체를 콩알만 하게 줄이면 귀걸이 속에 들어갈 수도 있다. 컴퓨터가 작아지면 휴대전화는 저절로 통합된다.

그러나 ‘뇌신경 통신 컴퓨터’로 가기 전에 중간 단계가 있을 것이다. 뇌신경 통신이 실용화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음성인식 기술이 사람이 말하는 것을 자동으로 입력해줄 것이다. 문자인식 기술이 문서를 가까이 대면 문장을 자동으로 읽어 들인다. 필요시 펼쳐보는 전자페이퍼 출력장치가 개발된다. 안경과 결합된 홀로그래픽 출력장치가 눈앞의 공간에 영상을 만들어 낼 것이다. 손수건 모양의 입출력 장치로 입력하고 출력할 것이다. 콩알 몸체와 손수건 입출력 장치만 남게 된다.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이 불황이다. 공급이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칩이란 컴퓨터가 계산을 빨리 하고 많은 것을 기억하게 해주는 부품이다. 그러나 고객은 컴퓨터나 휴대전화가 똘똘해지는 것에는 더 이상 관심이 적은 것 같다.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통해 TV와 영화까지 보니 만족도가 너무 높아졌다.

고객이 원하는 소형화를 가로막는 것은 입출력 장치다. 혹시 반도체 회사들은 습관적으로 컴퓨터 머리를 좋게 하는 칩만 고객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고객의 욕망에 따라 시장이 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컴퓨터는 ‘손수건’ 모양을 거쳐 ‘귀걸이’ 같은 신체 부착형으로 갈 것이다. 누가 미래 IT 산업의 주인공이 될지 명확해진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미래산업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