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디터칼럼

‘무관용 원칙’ 이 진짜 적용돼야 할 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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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신참 사회부 기자 때니까 20년도 더 된 얘기다. 새벽마다 경찰서들을 돌았는데 형사계 앞에 가면 “철썩” “철썩” 하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조사받던 피의자가 형사에게 뺨을 맞는 거였다. 누군가 “어이, 기자 왔다”하고 외치면 갑자기 형사계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다.

요즘은 경찰서 가서 두들겨 맞았다는 사람 못 봤다. 사실은 거꾸로다. 술에 만취해 난동 부리고 경찰관까지 마구 패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어느 여경의 울분 섞인 수기를 읽은 기억도 난다.

1980년대 대학 다닐 때 나는 경찰관들을 ‘짭새’라고 조롱했다. 군인들에 대해선 ‘군발이’라고 불렀다. 다른 학생들도 다 그랬다. 군사정권에 대한 분노를 그들에게 대신 퍼부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경찰 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얼마 전 마감한 순경 시험은 경쟁률이 28 대 1이었다. 1341명을 뽑는데 3만7000명 이상이 응시했다. 고시 뺨친다.

민주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통성 시비가 사라졌고 군인과 경찰이라는 직업이 다시 선망받는 사회가 된 게 참 다행이다. 젊은 시절, 내가 홧김에 조롱했던 것도 다 용서받으리라 믿는다.

시대도 바뀌었고, 경찰도 달라졌지만 별로 안 변한 게 있다. 대한민국 시위문화다. 여전히 폭력이 난무한다. 쇠파이프와 각목이 동원되고, 관공서에 불지르고, 경찰버스 뒤집고, 의경들을 때린다.

“왜 경찰의 폭력은 지적 안 하느냐”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난 동의 못 하겠다. 군사정권 땐 평화적이고 뭐고 시위 자체를 못하게 했다. 학생이건 시민이건 모여만 있으면 최루탄 쏘고 경찰봉으로 패고, 가방 뒤지고 그랬다. 지금도 그런가?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의 말처럼 ‘집회·시위·결사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이고 교통방해 등을 이유로 금지하면 안 된다. 하지만 무슨 대책회의니, 단체니 하는 이름 내걸었다 해서 고속도로까지 점거해 무법천지 만드는 걸 용인할 순 없다. 가장 궁금한 게 있다. 대체 그렇게 해서 뭘 얻었나.

김경한 법무장관이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을 천명했다. 각종 집회 때마다 폭력을 일삼는 상습 시위꾼을 엄벌하고 불법 파업에 대해선 형사재판 때 손해배상도 함께 하도록 법을 고친다고 한다. 경찰이 시위대 검거 같은 정당한 공무를 집행하다 사고를 내면 과감하게 면책권을 보장하겠다는 대목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헌법보다 위에 있는 법이 뭔지는 다 알 것이다. 떼법, 정서법이다. 김 장관은 “앞으로 이런 단어가 더 이상 발 붙일 수 없게 하겠다”고 말했다. 한번 지켜보자. 적어도 시위문화에 관한 한 노무현 정권은 후퇴했다. 불법 시위대가 아니라 그걸 진압한 경찰관들이 더 혼쭐나는 분위기를 조성했으니까.

나는 열심히 일하고 세금 꼬박꼬박 내면서 사는 일반 시민은 이런 식의 폭력시위에 대해 더 이상 동의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1980년대엔 ‘넥타이 부대’로 시위대에 박수쳤던 시민들이 이젠 달라졌다는 것이다. 폭력시위 하는 사람들만 그런 시대변화를 모르거나, 아니면 일부러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무관용 원칙’이 적용돼야 할 대상은 한 곳이 더 있다. 국민 대표라는 분들이 모여있는 국회다. 한번 물어보자. ‘무더기로 몰려 다니고, 욕설과 고함 지르기가 장기다. 무책임한 발언과 비방을 일삼으며 방송 카메라 앞에서 상대방 멱살을 잡는 걸 즐긴다. 특히 대선·총선 때는 거의 이성을 상실한다. 이게 누군가?’ 장담컨대 100명 중 99명은 똑같은 답변을 할 것이다.

폭력시위는 끝내야 한다. 이런 후진적 시위문화를 용납하기엔 우리 시민의식이 훌쩍 성숙했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의사당 안에서 서로 욕설 퍼붓고 몸싸움하는 꼴 보기 지긋지긋하다. 청문회 한답시고 상대방이 답변하려 하면 “그만 하라”고 윽박지르는 한심함도 지겹다.

방법이 없는 게 아니다. 총선이 멀지 않았다.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해 과거에 무슨 짓을 했든 상관없다고 믿는 금배지들을 과감히 떨어뜨리자. 참기 힘든 건 폭력시위만이 아니지 않는가.

김종혁 사회부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