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책읽기] 멍청한 자여! 그대 이름은 인간이니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Predictably Irrational
(예상되는 불합리성)

Dan Ariely (2008),
하퍼콜린스,
280쪽, 25.95 달러

‘공짜’의 힘은 막강하다. 지극히 유혹적이다. 그래서 냉철한 이들의 이성까지 마비시킨다.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게 뻔한 싸구려 볼펜, 열쇠고리도 공짜라면 가져오기 마련이다. 들고 가야 하는 성가심 같은 건 전혀 아랑곳 없다. 누구든 배가 불러도 뷔페에선 한 그릇은 더 먹으려 한다. 5초만 생각해도 미련하기 짝이 없는 비이성적인 행동이 공짜 앞에선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왜 이럴까.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예상되는 불합리성』 (Predictably Irrational)은 이런 인간의 어수룩한 사고를 다룬 책이다. 저자 댄 애릴리(Dan Ariely)는 실증적 실험을 통해 합리성을 결여한 듯한 인간의 행태를 분석했다. ‘두개 사면 하나는 공짜’라는 뻔한 상술에 넘어가 싸구려 양말을 비싸게 주고 사는 소비행태. 어리석기 그지 없는 이런 일도 주변에서는 숱하게 일어난다.

그렇다면 이런 행동은 바보 짓으로 매도돼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이성이 아닌 감정에 의해 내려진 나름대로 합당한 결정이라는 얘기다. 논리는 이렇다. 인간은 물건을 사든, 배우자를 고르든, 의사결정을 내리면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될 수 있다는 걱정을 한다. 단돈 100원에 사도 실수 하지 않았나 조바심 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공짜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아무 대가 없이 물건을 얻게 되면,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쁨에 겨운 나머지 불필요한 물건을 획득함으로써 생기는 비용, 즉 운송·보관·폐기 등에 따른 손실에 눈멀게 된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다른 예를 보자. 똑 같은 가짜 진통제가 있다. 실험 대상자에게 가벼운 전기충격을 준다. 그리곤 절반으로 나눈 뒤 가짜 약을 주면서 한쪽엔 1센트, 다른 쪽에겐 50센트 짜리라고 알려준다. 결과는 양쪽 다 효력이 있었다. 그러나 50센트짜리 가짜 약이 훨씬 더 잘 들었다. 선입견의 위력이 어떤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이처럼 인간의 행태는 합리성이 아닌 감정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경제활동도 물론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감정(Emotion)과 경제학(Economics)’가 결합된 ‘감정경제학 (Emonomics)’이라고 불렸다. 예컨대 공짜라면 무조건 챙기는 습성 등은 지극히 비합리적인 결정이지만 인간이기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인간은 늘 합리적 선택을 하는 건 아니다”라는 결론은 거대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세상을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 즉 ‘합리적 선택에 의해 돌아가는 시장은 항상 옳다’는 명제가 깨어지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이처럼 다분히 실존적인 인간의 행태를 인정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비만의 경우 한 달에 50달러어치의 초콜릿을 사는 건 비합리적이고도 멍청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런 일이 숱하게 일어난다. 인간이 감정에 지배 당하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런 비만자들의 신용카드로는 50달러어치 이상의 초콜릿을 사지 못하도록 하는 식의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웃기면서도 번뜩이는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댄 애릴리

MIT대 행태경제학 교수다. 유태인인 그는 이스라엘에서 살던 18세 때 조명탄이 터지는 바람에 큰 화상을 입고 3년간 꼼짝없이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다. 이 당시 그는 당연해 보이는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 새로운 각도에서 사물을 분석하는 법을 배웠다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