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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아킴오빠"의 드라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금년 미국 프로농구 플레이오프 드라마는 나이지리아 태생 「아킴 오빠」를 최고의 스타로 탄생시켰다.올랜도 매직에 4연승을 거두고 휴스턴 로케츠가 2년 거푸 치솟는 순간 아킴 올라주원은맨먼저 알라신(神)에게 감사를 올렸다.아랍어 아 킴(Hakeem)의「H」는 묵음으로 「현자」(賢者)를,올라주원(Olajuwon)은 「정상」(頂上)을 뜻한다.
시애틀 슈퍼소닉스 코치 조지 칼은 『마이클 조던에 버금갈 선수는 아킴밖에 없다』고 일찍이 점찍었었다.이번 시리즈를 지켜본피닉스 선스의 찰스 바클리는 『조던이 복귀했지만 2년 공백으로녹이 슬었다.아킴이 세계 베스트』라고 단언한다 .
63년 라고스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때 축구및 핸드볼의 골키퍼였다.나이지리아 국가대표 농구팀의 센터로 스카우트된 78년까지는 농구를 몰랐다.美 국무부직원의 주선으로 80년 미국대학 농구팀을 방문했다.뉴욕에 처음 내린 그는 너무 추워 따뜻한 곳을찾다 휴스턴대학과 연을 맺었다.
키 2m10㎝,체중 85㎏의 비쩍 마른 그에게 대학측은 근육을 다져 체중을 늘리도록 주문했다.
2년후 그의 팀은 대학 토너먼트 4강에 올랐고 우승은 놓쳤지만 그는 4강전 MVP에 뽑혔다.
84년 아킴은 조던과 바클리에 앞서 프로농구 추첨순위 1번으로 등장,휴스턴 로케츠에 선택됐다.바스켓앞에 우뚝 솟아 훅슛을집어넣고,상대방 슛을 블록하고,리바운드를 잡고,게다가 뒤로 물러나면서 페이드 어웨이 점프슛을 날리는등 「평면 (plane)플레이」에서 그는 왕년의 체임벌린과 러셀,압둘 자바의 경지를 넘어서고 있다.시즌중 부상등으로 팀의 정규시즌 성적은 47승 35패,서부콘퍼런스 플레이오프 진출 8개팀중 6위였다.
지난 2월 대학때 팀 메이트였던 드렉슬러가 합류,콤비를 이루면서 그의 로케트는 치솟기 시작했다.최상위팀들을 차례로,그것도어웨이경기에서 쾌승을 거듭했다.동료들 사이에 그의 별명은 우리들의 꿈이란 뜻에서「드림(Dream)」이고,팬들 에게는 「텍사스의 키 큰 형제(fraternity)」다.우리식으로 영락없는「오빠」다.코트에서나,코트 바깥에서나 부드럽고 이기적이지 않은매너가 호감을 더한다.93년에 미국시민이 돼 96년 올림픽 미국 국가대표로 출전자격을 갖추었다 .이민쿼터 축소등 반(反)이민물결이 드센 미국의 현상황에서 「아킴 오빠」의 성공이 묘한 대조를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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