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7현장에서>壇上만 후끈 壇下는 냉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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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새마을호편으로 대전(大田)역에 도착한 것은 15일 오전11시42분.선거분위기가 어느정도일까 하는 기대를 안고 역(驛)광장에 나가본 순간 맥이 빠진 기분이었다.너무나 한적하고 조용했기때문이다.
먼저 민자(民自),자민련(自民聯),민주(民主)등 3당의 선거대책본부에 전화를 걸어 당일의 유세장소를 확인했다.오후5시 천동국민학교에서 연설예정인 염홍철(廉弘喆.民自)후보의 대책본부에위치를 물어보니 여성사무원의 말인즉『아직 거기까 지는 파악하지못했다』는 대답이다.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전의 가장 중심거리인 역에서 도청까지의 길에 접어드니 각 후보의 선거플래카드가 5~6m 간격으로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선거운동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첫 신호인 것이다.그곳에 눈길을 던지는 시민은 거의 없는듯 했다.
목척교를 복개,공원으로 만든 시민공원에 가니 한가롭게 시간을보내는 사람들이 있어 말을 건네보았다.후보자 이름을 아느냐는 물음에 거의 모두가 고개를 흔들고 한 두사람이 시장후보중 1번(민자당의 廉弘喆)과 3번(자민련의 洪善基)만 안다고 대답한다.도.시.구의원을 비롯,구청장이름을 안다는 사람은 없다.완전히사각지대인 것이다.
도청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 중년 아주머니 한분이 전단을돌리기에 어느 후보의 것인가하고 받아보니「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전단이다.웃음이 나왔다.
상공회의소 뒷골목에 자리잡은「긴자」라는 일식(日式)집에 들어섰다.시간이 좀 지난 탓인지 손님이 별로 없다.30대 중반의 여주인이 직접 초밥을 만들고 있었다.식탁에 앉아 선거에 대한 관심도를 물었다.한마디로『관심없어요』라고 잘라 대 답한다.이어그녀는『선거를 해서 사람이 바뀌면 뭔가 좀 달라지는게 있어야지요.피부로 느낄만큼 뭔가 개선되는게 있어야 할텐데 더 나빠지는것 같아요.장사는 말할 것도 없고….』상당히 불만스런 목소리다. 「위는 뜨겁게 달아오르는데 아래는 차갑다」는 말이 실감나게느껴진다.투표일이 10일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이곳 시민들의반응은 무관심 일색이다.선거사령탑이나 일선 후보들은 오전 6,7시부터 자정까지 파김치가 다되도록 표밭을 훑고 열을 올리고 있으나 대체로 유권자들의 반응은 무덤덤한 편이다.
때문에 후보자 특히 도.시.구의원,기초단체장들은 여성도움이를동원하고 로고송을 만들어 자신의 이름 알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유권자의 관심을 끄는데는 역부족인 듯 하다.
이를 확인하러 유세현장을 한번 찾아나섰다.오후2시 역 근처에위치한 아리랑백화점 앞에서 유세하기로 한 민주당의 변평섭(邊平燮)후보 연설현장엔 운동원을 포함,1백여명이 모여 신문.방송에이미 소개된「장사가 잘돼야 대전이 산다」는 주 제의 연설에 목청을 돋우는 모습이다.
오후5시 천동국민학교에서 열린 민자당 염홍철후보의 유세장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운동장 정문옆 나무그늘에 약3백~4백명이별 표정없이 앉아 있다.廉후보가 교통문제등을 기필코 해결하겠다는등 목청을 돋우면 앞줄 맨앞과 뒷줄에 서있는 운동원인듯한 20대청년들이『와-』하고 박수를 유도하면 마지못해 따라 하는 모습이 어색해 보였다.
그러나 오후4시 유성가는 도중의 유등천고수부지에서 열린 자민련의 유세장은 상황이 달랐다.경찰차가 몇대씩 동원돼 질서유지에나설 정도로 청중이 많이 몰려들었다.주최측은 1만명,경찰은 5천명이라고 했으나 경찰추산보다는 많을 것 같다.
당총재인 김종필(金鍾泌)씨를 비롯해 정석모(鄭石謨).김용환(金龍煥).한영수(韓英洙)씨등 자민련 거물들이 대거 찬조출연한 탓도 있겠지만 충청도에선 역시 자민련바람이 일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金총재는 대통령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의회정치를 살리는 것인데 민주투사라는 金대통령은 지금까지 의회기능을 죽여버렸다며 민주화투사는 「허상」일 뿐이라고 열을 올렸다.
그의 연설을 뒤로 하고 다시 택시를 타고 역으로 가는 도중 기사에게 네명(무소속포함)의 후보중 어느 후보에 관심이 가느냐고 했더니 『나란히 있는 네곳의 곰탕집에서 모두 자기 집이 제일이라고 하니 일단 맛을 봐야 할 것 아니냐』고 비유적으로 설명하면서『후보자들은 경제적으로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니 어느 누가 되던 제발 앞으로 4년간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해 뭔가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을 맺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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