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22. 한국인 자존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필자는 일본 사람들에게 당당해 보이려고 애썼다.

요즘도 내 안에 두 명의 내가 공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하나는 대담하고 파워풀하며 자존심 센 가수 패티 김이고, 또 하나는 한없이 소심하고 마음 약하며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 김혜자다.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가수를 하겠다고 고집 부리고, 맞선 자리를 박차고 나올 때의 나는 패티 김이다. 하지만 일본에 도착한 첫날 호텔에서 어머니가 싸준 떡을 펼쳐놓고 밤새 울며 잠 못 이룰 때의 나는 그저 김혜자일 뿐이다. 50년을 무대에서 노래했으면서도 무대에 서기 전에는 여전히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리고 물 한 모금도 마음 놓고 못 마시는 나는 김혜자이지만, 수천 명도 넘는 일본 관객 앞에서 까맣게 잊어버린 ‘우타이마스(노래 부르겠습니다)’ 대신 유명 백화점 이름을 내뱉는 배짱은 패티 김의 대담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도도함 혹은 거만함이라고 표현하는 나의 강한 자존심은 솔직히 우리 집안 내력이다. 8남매가 모두 자존심이 셌으며,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패티 김은 거만하다”라는 말을 들을 때 썩 유쾌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솔직히 제가 좀 도도합니다”라고 인정하는 여유도 부린다. 집안 내력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나의 50년을 지켜준 힘이기 때문이다.

자존심 강하기로는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일본에서도 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사실 내게 대놓고 한국 사람이라고 비하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일본인의 의식 저변에는 한국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분명 있었다. 대다수 재일동포는 일본인이 꺼리는 일에 종사하거나 일본인의 멸시를 받으며 살아갔다. 당연히 재일동포라는 사실을 숨기고 사는 사람도 많았다.

연예계에도 재일동포나 한국계 일본인이 꽤 많았는데 그들은 하나같이 쉬쉬했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 스스로 재일동포임을 떳떳하게 밝히거나 한국계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홍보하는 연예인도 많지만 그때만 해도 한국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더 일하기 힘들어진다고 했다.

공연장이나 방송국 분장실에서 대기하고 있다 보면 가끔 일본인으로 보이는 몇몇이 가만히 다가와 “사실 제가 한국인입니다” 라며 씁쓸하게 웃곤 했다. 그때 일본에서 우리는 ‘간코쿠진’이 아니라 ‘조센진’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고 분했다. 일본에서도 노래만큼은 자신 있는데, 일본에 와서도 나보다 노래 잘하는 가수를 보지 못했는데,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저들이 나를 얕잡아보지 않을까 생각하면 참을 수가 없었다.

“일본 사람들에게 무시 당하지 않으려면 더 잘하는 수밖에 없어! 노래를 최고로 잘하는데야 내가 한국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무슨 상관이겠어? 그래! 더 잘하자! 더 잘해야만 살아남는다!”

패티 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