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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한 모퉁이 돌면 흥정하는 재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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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로드. 맘모사원의 전통향

골목은 모세혈관이다. 사람과 물류를 도시 구석구석으로 실어 나른다. 골목은 그물이다. 도시와 사람을 묶고, 관광객의 환상과 현지인의 일상을 연결한다. 골목은 문화다. 개성 넘치는 카페와 갤러리, 공연장과 가게가 그 안에 숨어 있다.

week&이 새 연재 ‘세계 골목길 산책’을 시작합니다. 유명 관광지 뒤편 골목의 작은 볼거리와 얘깃거리를 전합니다. 그렇고 그런 ‘판박이 여행’ 대신 새로운 추억거리를 찾아 함께 떠나보실까요. 김한별 기자

홍콩은 여자들의 여행지다. 쇼퍼홀릭(shopaholic) 골드미스들은 홍콩의 7~8월 여름 세일, 크리스마스~구정 겨울 세일을 기다리는 낙으로 1년을 버틴다. 그들은 공항에 내리자마자 하버시티·IFC몰로 달려간다. 배우 량차오웨이(梁朝偉),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여성팬에게 홍콩은 ‘성지’다. 그들은 영화 속 장면을 좇아 카오룽 반도와 홍콩섬을 순례한다. 미드레벨(Mid-level) 에스컬레이터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영화 ‘중경삼림’에 등장한 덕에 명소로 뜬 곳이다. 하지만 웬만한 ‘열혈 홍콩팬’이 아니면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진짜 홍콩’은 대형 쇼핑몰이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 바로 그 아래 골목길 속에 숨어 있다는 점이다.

<홍콩>글·사진=김한별 기자

영화가 아니라 일상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홍콩 섬 최대 번화가인 센트럴과 고급 주택가인 미드레벨을 연결한다. 길이 800m. 끝에서 끝까지 20분이 걸린다. 세계에서 가장 길어 『기네스 북』에도 올라 있다. 하지만 영화에 혹해, 혹은 ‘세계 최장’이 궁금해 몸을 실었다가 꽤 많은 사람이 실망하고 돌아선다. 생각보다 로맨틱하지도 특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홍콩여행 ‘고수’들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애당초 ‘관광용’이 아니라 ‘생활용’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홍콩은 비좁고 무더운 땅이다. 시원한 산 꼭대기에 집을 짓고 보니 도로 사정이 신통찮았다. 그렇다고 계단으로 출퇴근하기엔 비탈이 너무 가팔랐다. 그래서 만든 게 에스컬레이터다. 양방향이 아니라 일방통행이다. 출근시간(오전 6~10시)엔 내려오고, 그 이후(오전 10시20분 ~자정)엔 올라간다. 그게 끝이다. 행여 관광 삼아 정상까지 올라갔다간 다리·허리 두드리며 걸어 내려오거나 비싼 돈 주고 택시를 타야 한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제대로 이용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 끝이 아니라 ‘중간’에 내리는 것이다. 에스컬레이터 아래는 소호(SOHO) 지역. 수많은 음식점과 바(Bar), 숍이 빽빽이 들어선 곳이다. 뉴욕·런던의 소호보다는 못해도 갤러리도 꽤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크고 작은 골목길로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갤러리 구경 뒤 ‘사다리’ 타기

소호의 거리 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엘긴 스트리트(Elgin St)와 스톤턴 스트리트(Staunton St)다. 여행 가이드 북에 등장하는 소호 지역 음식점과 숍 대부분이 이 두 거리와 그 사잇길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소호를 좀 더 폭넓게 둘러보고 싶다면 엘긴 스트리트 다음 캐인 로드(Cain Rd)에서 내리자. 엘긴이나 스톤턴에 비해 한결 소박하고 조용한 거리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왼편으로 한 블록 정도를 가면 올드 베일리 스트리트(Old Bailey St)와 만나는 코너에 홍콩의 유명 갤러리 두 곳이 모여 있다. 쇼니갤러리(少勵畵廊, www.schoeni.com.hk)와 오사지소호(奧沙蘇豪, www.osagegallery.com)다. 콰이풍 힌 아트 갤러리(季豊軒畵廊, www.kwaifunghin.com)와 더불어 홍콩의 ‘3대 메이저’로 꼽히는 곳들이다. 다만 오사지의 경우 쿤통(觀塘) 지점이 메인으로 소호 지점은 규모가 좀 작은 편이다. 주로 전시하는 것은 중국 현대미술 작품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중국 현대 미술 작품들이 주로 구상 작품 특히 인물 그림 위주인데 반해, 이곳에선 옵아트·추상미술 등 좀 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구경할 수 있다.

갤러리 구경을 마쳤다면 캐인 로드를 되짚어 올라가자. 에스컬레이터·손중산기념관을 지나 조금 더 걷다 보면 산 아래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길 하나가 나온다. 래더 스트리트(Ladder St), 사다리 거리다. 이름 그대로 사다리처럼 좁고 촘촘한 돌계단이 가파른 산비탈을 타고 아래로 쭉 이어진다. 에스컬레이터가 생기기 전 미드 레벨에 살았던 부자들이 가마를 타고 오르내렸다는 길이다.

골동품 거리냐, 기념품 거리냐

그래함스트리트. 고프스트리트(사진下)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몇 블록 내려오다 보면 제법 큰 도로가 나온다. 그 모퉁이에 만모사원(文武廟)이 서 있다. 1847년 건축된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도교 사원이다. 소호 거리에서 거의 유일하게 단체 관광객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만모사원 앞 도로가 중화권 최대의 골동품 거리로 유명한 할리우드 로드(Hollywood Rd)다. 길을 따라 불상·도자기·고가구 등을 거래하는 골동품 상점이 죽 늘어서 있다. 가게 앞에 ‘香港藝術品商會’라고 쓰인 붉은 등을 달고 있으므로 다른 가게와 한눈에 구별된다. 고가의 물건이 대부분이므로 웬만하면 살 생각은 접자. 그저 서울의 인사동이나 이태원 고가구 거리 구경하듯 둘러보면 재미있다.

쇼핑을 하고 싶다면 계속 래더 스트리트를 타고 바로 아래 골목으로 내려가자. 표지판에 쓰인 공식적인 이름은 어퍼 래스커 로우(Upper Lascar Row). 하지만 현지인들에겐 캣 스트리트(Cat St)로 불리는 곳이다. 중국인들에게 쥐는 도둑, 고양이는 장물아비의 상징이다. 캣 스트리트는 과거 장물이 자주 거래되던 곳이라 해서 붙은 별명이다. 지금은 장물 대신 옥 장신구, 사기·목각 인형 등 작은 기념품을 파는 거리로 바뀌었다. 할리우드 로드와 달리 싼 것들이 대부분이다. 흥정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나에 70홍콩달러(HKD)라던 마노 목걸이를 두 개 산다고 하니 금방 50HKD로 내려갔다.

모던한 홍콩을 만나고 싶다면

할리우드 로드와 캣 스트리트의 비슷비슷한 중화풍에 지쳤다면 ‘탈출구’가 있다. 할리우드 로드를 타고 가다 싱 왕 스트리트(Shing Wong St)를 만나면 아래쪽으로 따라 내려가자. 길이 끝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고프 스트리트(Gough St)다. 완탕면을 파는 노천 음식점 한 곳을 빼면 중화풍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아주 모던한 거리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골목 중앙에 있는 인테리어 소품 숍 홈리스(www.homelessconcept.com). 미국 모마(MoMA), 일본 덜턴(Dulton) 등 세계 각국의 디자인 상품들을 모아놓은 편집 매장이다. MoMA의 유명한 아웃라인 꽃병이 480HKD, 카르텔(Kartell)의 난쟁이 의자가 2400HKD다. 침사추이와 코즈웨이베이 등에도 매장이 있지만 이곳이 본점이다. 골목 끝 쪽에 있는 래니K(www.raneek.com)는 미국 뉴욕의 파슨스 디자인 스쿨을 졸업한 주인이 운영하는 디자이너 부티크다. 홍콩 연예인들이 즐겨 입는 브랜드라고 한다. 하지만 그만큼 가격도 세다. 브라우스 한 장에 보통 1500HKD가 넘는다.

긴 골목 산책에 지쳤다면 잠시 카페에 들러 쉬어 가자. 햄버거 공화국(Burger Republic), 미각(palate), 10번 스튜디오(Lot10) 등 재미난 이름의 서양식 레스토랑·카페가 줄지어 서 있다.

Tip

■ 홍콩 뒷골목 산책만큼 개별 여행(FIT)에 어울리는 코스는 없다. 항공편과 숙소만 예약하고 훌쩍 떠나보자. 국적기 외에도 캐세이퍼시픽·타이 항공 등 저렴한 항공편이 많다. 숙소는 소호지역을 둘러보려면 카오룽 반도보다는 홍콩섬 센트럴(中環) 쪽으로 잡는 게 좋다. 직접 예약이 힘들다면 개별여행 전문 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 내일여행(www.naeiltour.co.kr, 02-6262-5000)은 ‘홍콩 금까기’란 이름으로 다양한 테마의 개별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3월 출발 1박3일 상품이 최저 34만9000원부터. 연휴가 끼어 있는 5월 초의 경우 조기 매진될 수 있으므로 예약을 서두르는 게 좋다.

■ 1홍콩 달러(HKD)=125원꼴. 물가는 가벼운 한 끼 식사로 적당한 새우완탕면이 15HKD(센트럴 침차이키), 간식으로 그만인 홍콩식 에그타르트가 4.5HKD(센트럴 타이청 베이커리)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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