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무늬만 민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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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산업은행이 올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한 뒤 내년부터 본격 민영화 작업에 들어간다. 우리금융지주·기업은행 등과 묶거나 경영만 민간에 맡기는 방식은 사실상 물 건너 간 셈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임기 내에는 지분 49%만 팔기로 해 ‘무늬만 민영화’란 지적도 나온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20일 “산업은행과 그 자회사들을 올해 안에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고 내년부터 시장 상황을 보아 지분 매각 작업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매각 대금으로 가칭 ‘코리아 인베스트먼트 펀드(KIF)’를 설립해 정책금융 등 공적 기능을 담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민영화 작업이 진행되려면 먼저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한 금산분리 관련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18대 국회 개원 후 곧바로 법 개정을 마치면 내년에 주식 매각을 통한 민영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 개정이 이뤄지더라도 국내 4대 그룹의 은행 인수는 어려울 전망이다. 곽승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은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하더라도 삼성·LG·SK·현대차 등 국내 4대 그룹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되면 막대한 자금력을 가진 연기금의 금융 공기업 인수 가능성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연금공단 김호식 이사장은 이날 “금융회사 인수가 장기적으로 유망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정부가 매각할 계획인 우리금융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매각 속도가 지나치게 더딘 것도 문제다. 민간경제연구소 관계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올 1월 발표한 대로 이번 정부 내에서 49%의 지분만 매각한다면 이는 진정한 민영화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 관계자는 “지분을 얼마나 팔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며 “매각이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굳이 정부가 50% 이상 지분을 보유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다음 달 말께 구체적인 매각 일정을 발표할 계획이다.

전 위원장은 또 “산업은행의 몸집이 가벼워야 민영화에 유리하다”며 “(산업은행이 지분을 보유한 회사들 중) 비금융회사가 일차적인 지분 매각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현대건설·대우조선해양·현대종합상사·하이닉스·대우인터내셔널 등의 매각 작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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