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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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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사람의 몸무게가 70㎏이라면 그중 45㎏은 물이다. 적지 않은 물을 몸에 넣고 다니지만 1%만 모자라도 갈증을, 5%만 부족해도 현기증을 느낀다. 또 10%가 부족하면 걷기조차 힘들고, 12%가 모자라면 생명까지도 위태로워진다. 단식하더라도 물을 마시지 않고는 18일을 넘기기 어렵다.

한국 가정에서는 한 사람이 매일 178L의 물을 사용하지만 사하라 사막 남쪽 지역이나 몽골 초원에서는 하루 5L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유엔은 1992년 “한 사람이 하루에 물 40L를 공급받을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지만 지구상에서 11억 명은 여전히 물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이들은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 1㎞ 이상 걸어가야 하거나, 가까운 곳에 있더라도 심하게 오염된 물을 마셔야 한다. 가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소말리아 같은 곳에서는 우물을 차지하기 위해 부족 간에 살육전도 벌어진다.

22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매년 이 무렵이면 한국이 물 부족 국가냐, 아니냐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곤 한다. 스웨덴의 말린 폴켄마르크라는 학자는 한 사람이 1년에 사용할 수 있는 물이 1700㎥보다 적은 나라를 물 부족 국가로 분류했고 이 기준이 국제적으로도 널리 사용된다. 한국인 한 사람이 연간 사용할 수 있는 물의 양은 1488㎥이므로 이 기준으로는 물 부족 국가다. 하지만 봄철 갈수기 일부 지방을 제외하면 부족함을 못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차이는 한국이 부족한 물을 수입해 보충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물론 실제 물이 아니라 식량이라는 형태를 통해 ‘가상의 물(Virtual Water)’을 수입하는 것이다. 밀 1t을 생산하는 데는 1300㎥, 쇠고기 1t을 생산하는 데는 1만5000㎥의 물이 필요하다. 식량을 수입하면 그만큼의 농업용수를 절약하는 것이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한국은 97~2001년 5년 동안 매년 390억㎥에 이르는 ‘가상의 물’을 수입하고 70억㎥를 수출, 순수입량이 320억㎥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일본·이탈리아·영국·독일에 이어 세계 5위의 물 수입국이다. 매년 소양호 저수량의 11배, 하천·댐·지하수로 끌어 쓰는 실제 물 사용량과 맞먹는 양을 수입하고 있다.

최근엔 에너지 가격이나 식량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고 있다. 덩달아 자원외교, 식량안보라는 말도 되살아나고 있다. 물의 날을 맞아 가려져 있는 물 부족 문제도 생각해 보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