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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워치] 당·정부에 줄대는 ‘관시 네트워크’가 비즈니스 키워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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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007년 10월 16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공산당 당대회에 참석한 선원룽 사강그룹 회장이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강그룹 제공]

자신만의 기술과 노력으로 돈을 번다는 것은 비즈니스의 정도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앞과 뒤, 아래와 위로 열려 있는 무궁한 관시(關係)망을 활용해 성공을 노리는 게 훨씬 현명하다. 관시에 관시가 줄을 잇는, 혈연과 지연의 네트워킹이 현란할 정도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한국인도 잘 아는 이 관시의 개념에서도 최상의 것이 있으니 바로 ‘관시(官係)’다. 중국을 이끄는 공산당과 정부 관리에게 줄을 대는 행위다. 이야말로 중국 비즈니스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요체다.

중국 대륙은 물론이고 대만과 홍콩의 잘나가는 비즈니스맨들 사무실에는 으레 커다란 사진이 등장한다. 덩샤오핑(鄧小平)·장쩌민(江澤民)은 물론이고 전임 대만총통인 리덩후이(李登輝) 사진도 줄줄이 걸린다. 잘나가는 지도자와 ‘통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과 악수하거나 면담하는 장면을 연출한 사진이다.

◇최대 민영 제철기업 사강그룹=지난달 25일 상하이 푸둥(浦東)공항에서 자동차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장쑤(江蘇)성 장자강(張家港)시 사강(沙鋼)그룹의 제철공장. 공장과 인접한 창장(長江) 하구 7㎞에 걸친 전용 항구 10개의 1만t급 부두에는 화물선 여러 척이 분주히 완제품을 선적하고 있었다. 사강은 포스코의 중국 내 최대 스테인리스 공장인 장자강푸샹부슈강(張家港浦項不銹鋼)의 합작파트너로, 생산량의 29%를 한국에 수출하는 회사다.

이 회사 선원룽(沈文榮·63)회장을 만난 곳은 본사 9층 회의실. 문을 밀치고 들어가니 벽면에 걸린 선 회장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악수 사진이 눈에 들어 온다. 그는 “지난해 10월 당 대회때 찍은 사진”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선 회장이 건넨 명함에는 회장 말고도 이사회 주석, 사강그룹 당위원회(黨委)서기 등의 직함이 박혀 있다. 그의 친(親)정치적 성향을 보여준다. 그는 공산당 내 서열이 회사가 있는 장자강시의 당서기보다도 높다.

“중국의 가장 큰 정치는 경제발전과 개혁·개방이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정치가와 기업인 모두의 본분이다.” 관시(官係) 구축의 노하우를 묻는 질문에 대한 선 회장의 완곡한 답이다. 정치와 경제는 함께 간다는 얘기다.

선 회장은 이 같은 중국 정부와의 밀접한 네트워킹을 토대로 사강을 중국 4위 철강기업(민영 철강기업으로선 최대)으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당과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등에 업은 사강은 지난해 철강 생산 2000만t, 판매수입은 1000억 위안(약 14조원)을 기록했다.

◇와하하 간부 80%가 공산당원=다음 날 찾아간 저장성 항저우(杭州) 경제기술개발구에 위치한 식음료 기업인 와하하(娃哈哈) 생산기지의 본관 2층 그룹 전시실. 이곳은 마치 공산당 전시실과 같았다. 그룹 총수 쭝칭허우(宗慶後·63)와 공산당의 돈독한 관계는 벽면을 가득 메운 고위 지도자들의 공장 시찰 사진이 대변하고 있었다.

장쩌민 전 주석의 사진을 필두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시진핑(習近平)국가부주석의 사진도 걸려 있다. 산치닝(單啓寧) 와하하 대외연락사무실 부주임은 “쭝칭허우 회장은 2003년 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의원 격, 당시 기업인 대표 55명 참석)로 선출됐고, 올해도 11기 대표로 선출돼 베이징 전인대에 참석했다”며 “기업가에 머물지 않고 인민의 대표로서 국가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높은 사람과 사진 찍는 것으로만 만족할 수 없다. 당·정부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려면 필요한 곳에 필요한 인맥을 동원하는 슬기가 필요하다. 중국의 각 기업에는 그래서 고급 공산당원들을 자기 회사로 유치하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과제다.

지난해 영업수입 182억 위안(약 2조5480억원)을 기록한 와하하는 1993년 당위원회를 설치했고 현재 500여 명의 당원을 확보하고 있다. 중간 간부급은 80% 이상이 당원이다. 와하하 당위 서기를 맡고 있는 서젠잉(社建英)이 2000년 항저우 우수 당무공작자상을 받을 정도로 회사는 공산당 활동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90년대 중반 안후이성에서 와하하 제품을 먹은 어린이가 세 명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쭝칭허우는 관시망을 가동, 공산당 선전부를 통해 이 사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것을 막았다. 동시에 공안의 도움으로 독극물을 주입하고 돈을 요구한 범인을 잡았다. 쭝칭허우의 관시(官係)가 효력을 제대로 발휘한 경우다.

“중국에서 기업을 하려면 정치를 이해해야 한다.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전진하기 어렵다. 따라서 기업이 국가 문제 해결에 힘이 되어야 한다.” 쭝칭허우의 지론이다. 정부의 수요를 파악해 기업이 먼저 손을 내밀어 도와야 한다는 게 쭝 대표의 기본 방침이다.

◇“당원이 일 더 잘해”=다롄푸진강반(大連浦金鋼板)의 최계수(崔桂洙) 총경리는 “유능한 중국 직원을 공산당에 입당시키는 게 정부와 우호적 네트워킹 구축의 기본”이라며 “당원이 된 직원은 다른 직원보다 책임감도 있고, 또 모범적으로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와의 호흡도 중요하다. ‘서진북상(西進北上: 서북지역으로 발전), 농업문제 해결, 쩌우추취(走出去: 해외 진출)’는 와하하의 향후 3대 발전전략이다. 이는 서부대개발과 농촌 지원, 기업의 해외 진출 등 현재 중국 정부가 내건 정책에 기업의 발전방향을 일치시킨 것이다.

중국 비즈니스 세계에서 힘 있는 정부와 유착하려는 것은 오래된 전통이다. 비즈니스 전쟁에서의 큰 승패는 대부분 관(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갈렸기 때문이다.

◇진시황 아버지도 관시 기반으로 사업=중국에선 진시황의 아버지로 알려진 여불위(呂不韋)가 유력 제후들과의 관시를 기반으로 사업을 펼친 관상(官商)의 원조로 통한다. 명(明)대 강남의 휘상(徽商)과 함께 중국 양대 상인집단을 이뤘던 진상(晋商) 역시 나라의 북방정책을 적극 도와주고 성장의 기반을 쌓았다. 변경의 군사 요충지에 군량을 납품하고 그 대가로 소금 판매권을 받는 ‘개중법(開中法)’을 활용한 것이다.

‘권도(權道: 권력의 도)와 상도(商道)는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는 생각을 가졌던 청(淸)말의 거상 호설암(胡雪岩·1823~85)도 관상의 거두다. 그는 대신이자 군벌이었던 좌종당(左宗棠)의 군량 운반을 도와 태평천국군을 무찌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후 그는 고위 관리가 쓰는 붉은 모자를 쓰고 다녀 ‘홍정상인(紅頂商人)’이란 칭호를 얻었다. 선원룽·쭝칭허우는 중국 특유의 관상(官商) 유전자를 이어받은 대표적인 기업가 후예다.

장자강·항저우=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관시(關係)와 관시(官係):관시(關係)는 중국 특유의 끈끈한 인간 관계를 지칭하는 말. 중국은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형성되는 철저한 혈연·지연·학연의 인맥 네트워크 사회다. ‘메이관시 유관시, 유관시 메이관시(沒關係 有關係, 有關係 沒關係)’라는 “인맥이 좋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고, 인맥이 취약하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말이 이를 잘 보여준다. 수많은 관시 중 정부와의 유대를 지칭하는 ‘관시(官係)’는 기업 활동 부침의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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